얇은 나무판



  책꽂이를 짤 적에 반드시 뒤쪽에 얇은 나무판을 댄다. 얇은 나무판을 대지 않으면 책꽂이가 되지 않는다. 뒤쪽에 두꺼운 나무판을 댈 수 있으나, 책꽂이를 짜면서 뒤쪽에 두꺼운 나무판을 대는 사람은 없다. 두꺼운 나무판을 대면 책꽂이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책꽂이 뒤쪽에 나무판을 안 대면 어떻게 될까. 얇은 나무판이라지만, 이 나무판을 뒤쪽에 안 되면, 아무리 두꺼운 나무로 단단히 틀을 짰어도, 이리저리 흔들리거나 뒤틀린다. 얇은 나무판을 대고 작고 가는 못을 박더라도, 이 얇은 나무판이 있기에 책꽂이는 안 흔들리고 안 뒤틀린다. 언제까지나 튼튼하게 서서 책을 지켜 준다.


  책을 이루는 종이는 얇다. 겉종이는 두툼하고, 속종이는 얇다. 얇게 빚은 종이에 온갖 이야기를 얹는다. 나무를 베어 얇게 보들거리는 종이를 빚은 뒤, 언제까지나 고이 흐르는 이야기를 얹는다. 책을 읽는다고 하면, 얇은 속종이를 읽는다. 얇은 속종이에 얹은 이야기를 읽는다.


  책을 이루는 종이는 얇지만, 이 얇은 종이에 얹힌 이야기는 깊다. 이야기가 있기에 책이고, 이야기를 얹어서 나누기에 책이다.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책을 물려주고, 이야기를 펼치기에 책을 쓴다. 얇은 나무판처럼, 얇은 종이처럼, 얇고 가냘프면서 하얀 마음이 있는 사람이다. 얇은 종이에 까만 글씨를 새겨서 이야기를 짓듯이, 얇고 가냘프면서 하얀 마음에 까만 씨앗을 하나둘 심어서 아름다운 생각을 짓는다. 4348.5.5.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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