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피는 꽃 창비시선 144
이재무 지음 / 창비 / 1996년 2월
평점 :
품절


시를 말하는 시 93



시와 꽃숨

― 몸에 피는 꽃

 이재무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96.2.20.



  다섯 살은 다섯 살대로 아름답습니다. 다섯 살에는 다섯 살에만 누리는 빛나는 삶이 있습니다. 열다섯 살은 열다섯 살대로 아름답습니다. 열다섯 살에는 열다섯 살에만 즐기는 기쁜 삶이 있습니다.


  다섯 살 아이는 열다섯 살이 아니기 때문에 서운하지 않습니다. 열다섯 살 아이는 스물다섯 살이 아니기 때문에 섭섭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제 나이에 맞게 빛나면서 기쁩니다.



.. 포대자루에 담긴 감자알, / 낡고 헐한 버스에 실려 청양엘 간다 ..  (청양행 버스)



  사람이 누리는 모든 나이는 이녁한테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한 살도, 두 살도, 열한 살도, 열두 살도, 스물한 살도, 스물두 살도, 모두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마흔 살이나 마흔한 살도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예순 살이나 예순한 살도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사람한테는 나이만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도 언제나 처음이요 마지막입니다. 새로 찾아온 봄이기에 똑같은 봄이 아닙니다. 내가 누리는 나이에 처음으로 맞이하는 봄입니다. 봄에 보는 꽃도 지난해에 보던 꽃을 다시 보는 셈이 아니라, 내 나이에 새롭게 맞이하면서 기쁘게 누리는 꽃입니다.



.. 바람의 맛 달디단 것 / 새삼 밤밭골에 와 알았습니다 / 배 주린 후에야 밥 / 귀한 줄 알듯 / 서울 떠나고야 알았습니다 ..  (수목송)



  이재무 님이 빚은 시집 《몸에 피는 꽃》(창작과비평사,1996)을 읽습니다. 시집 이름처럼 ‘몸에 피는 꽃’을 이야기하는 싯말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몸에 피는 꽃이라면 ‘몸꽃’이 됩니다. 몸꽃이 피는 삶이라면 삶꽃이라 할 만합니다. 꽃이 피어나는 삶이요, 꽃이 피어나는 몸이니, 생각도 꽃과 같아 생각꽃이 될 테고, 사랑도 꽃과 같아 사랑꽃이라 할 만합니다. 모두 꽃이요, 꽃내음이며, 꽃밭입니다.



.. 도회지에 사는 동안 나무는 / 수직상승의 욕망만이 허용된다 / 길을 닮은 나무 / 나무는 단 한번 줄기의 높이만큼 / 가지의 넓이 갖고 싶다 ..  (가로수)



  한껏 봄이 무르익는 사월 끝자락입니다. 우리 집 마당과 뒤꼍을 갓꽃과 유채꽃이 가득 둘러쌉니다. 갓꽃과 유채꽃은 이 미터가 넘게 자랍니다. 경관사업을 하느라 군청에서 나누어 준 유채씨를 뿌린 논에서는 유채꽃이 일 미터가 채 안 되지만, 우리 집 유채꽃은 키가 참으로 큽니다.


  높다랗게 자라는 유채꽃과 갓꽃 밑에는 봄까지꽃이랑 코딱지나물꽃이랑 별꽃이 가득하고, 살갈퀴꽃이 막 올라오는 한편, 민들레꽃이 골고루 어우러집니다. 마당과 뒤꼍에서 풀을 뜯으면 내 몸에는 풀내음뿐 아니라 꽃내음이 번집니다.


  신나게 뜯은 풀을 부엌에서 헹구어 밥상을 차리는데, 어깨 쪽에서 뭔가 떨어집니다. 뭐가 떨어지나 하고 살피니 꽃송이입니다. 높다랗게 자란 유채꽃과 갓꽃을 스치면서 다니니, 어깨와 목덜미에 꽃송이가 붙었는가 봅니다.



.. 텃밭 장다리꽃 피어 / 나비 눈부시네 / 이 집 살림은 어떤가? / 저 집 곳간이 났나? / 이 꽃 저 꽃 치마폭 / 한나절 내내 들춰보더니 ..  (장다리꽃과 나비)



  꽃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꽃눈’이 됩니다. 꽃을 바라보면서 내 둘레를 꽃빛으로 받아들입니다. 숲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숲눈’이 됩니다. 숲을 바라보면서 내 둘레를 숲빛으로 헤아립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 다른 눈’이 되어 둘레를 바라봅니다. 다 다른 눈으로 다 다른 삶을 살피고, 다 다른 사랑을 가꾸면서 다 다른 꿈으로 나아갑니다.


  장미꽃도 곱고 동백꽃도 곱습니다. 튤립꽃도 곱고 찔레꽃도 곱습니다. 앵두꽃도 곱고 팬지꽃도 곱습니다. 곱지 않은 꽃은 없습니다. 곱지 않은 삶은 없습니다. 곱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시를 쓴 님은 싯말에 새로운 숨결을 넣으면서 곱고, 시를 읽는 님은 싯말에 새로운 가락을 입혀서 즐기기에 곱습니다.



.. 쑥국이 올라온 저녁밥상 / 국물 한 방울도 아껴 먹는다 / 밥 두 숟갈에 국물 한 숟갈 ..  (조그만 행복)



  시집 《몸에 피는 꽃》을 읽으면서 내 꽃삶을 떠올립니다. 새봄 내내 쑥부침개와 쑥국을 즐기는 내 꽃밥을 떠올립니다. 나는 늘 꽃밥을 차린다고 생각합니다. 꽃접시에 담기에 꽃밥이 아닙니다. 꽃을 먹는다고 여기기에 꽃밥입니다. 곁님과 아이들하고 늘 꽃밥을 누리면서 꽃내음을 먹고, 꽃사람이 된다고 느낍니다. 꽃으로 피어나는 숨결을 아침저녁으로 먹으면서 꽃사람이 되고 꽃마음이 되어 꽃사랑을 피웁니다.


  우리는 저마다 늘 먹는 밥대로 몸빛이 바뀝니다. 누구나 늘 마시는 바람대로 몸결이 달라집니다. 사람은 늘 쬐는 햇볕대로 몸매가 새롭습니다. 싱그러운 밥과 푸른 바람과 맑은 햇볕을 맞아들이는 사람은 아름답게 자랍니다. 꽃숨을 쉬면서 꽃살림을 가꿀 수 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사랑스럽게 거듭납니다. 참말 우리는 꽃넋이 되어 꽃노래를 부르는 꽃동무가 될 수 있습니다. 4348.4.26.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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