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50. 훨훨 날아간다
사진으로 찍기에 오래도록 가슴에 남지 않습니다. 가슴에 남겨야 비로소 오래도록 가슴에 남습니다. 사진으로 찍으면 무엇이 남을까요? 네, 바로 사진이 남습니다. 사진을 찍기에 사진이 남습니다. 글을 쓰면 글이 남습니다. 노래를 지으면 노래가 남습니다. 춤을 추면 춤이 남고, 웃음을 지으면 웃음이 남아요.
사진으로 찍으면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기에 오래도록 남는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러나, 사진으로만 놓고 보면 어떤 이야기나 삶이 있는지 제대로 살피기 어렵기 마련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사진으로 남기는 모습은 언제나 ‘아주 짧은 한때’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주 짧은 한때를 사진으로 남기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던 흐름을 찬찬히 짚도록 생각을 북돋우곤 합니다. 고작 사진 한 장이지만, 사진 한 장을 앞에 놓고 기나긴 이야기와 삶과 사랑을 되새기곤 해요.
그런데, 사진만 있고 이야기나 삶이나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못 떠올립니다. 사진만 있다면 아무것도 못 느낍니다. 가슴이 울렁이도록 기쁜 이야기가 있을 때에, 이러한 이야기에 곁들여 사진이나 글이나 그림이 한껏 빛납니다. 가슴이 벅차도록 아름다운 삶이 있을 때에, 이러한 삶과 나란히 사진이나 글이나 그림이 더욱 빛납니다. 가슴이 뛰도록 새로운 사랑이 있을 때에, 이러한 사랑을 바탕으로 사진이나 글이나 그림이 새삼스레 빛납니다.
훨훨 날아갑니다. 기쁜 이야기가 훨훨 날아갑니다. 훨훨 날아가면서 고운 씨앗을 뿌립니다. 아름다운 삶이 훨훨 날아가면서 우리 둘레에 고운 마음을 흩뿌립니다. 새로운 사랑이 훨훨 날아가면서 바로 이곳에 신나는 노래를 들려줍니다.
아무 때나 사진기 단추를 누르지 못합니다. 가슴이 기쁨으로 가득할 만한 삶을 겪고 이야기를 누리며 사랑을 나누는 자리에서 비로소 사진기 단추를 누를 수 있습니다. 기쁘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아름답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랑하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4348.4.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