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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왕국 일본의 알려지지 않은 진실 ㅣ 만화규장각지식총서 3
이현석 지음 / 부천만화정보센터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183
‘일본만화’가 아닌 ‘만화’를 보아야
― 만화왕국 일본의 알려지지 않은 진실
이현석 글
부천만화정보센터 펴냄, 2007.11.30.
이현석 님이 쓴 《만화왕국 일본의 알려지지 않은 진실》(부천만화정보센터,2007)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책은 퍽 얇습니다. 얇은 책 한 권으로 ‘만화왕국 일본’을 어느 만큼 보여줄는지 궁금한 노릇이고, 이 얇은 책으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는 어떻게 들려줄는지 궁금한 노릇입니다. 두께가 얇기에 모든 이야기를 못 담지는 않습니다. 작은 책이기에 수수께끼를 못 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보니, ‘만화왕국 일본을 버티는 뼈대’와 ‘만화왕국 일본이 서는 바탕’을 다루는구나 싶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 아니라 ‘다 알려진 이야기’를 다루고, 굳이 이 책이 아니더라도 여러모로 퍼진 정보를 그러모았다고 느낍니다.
.. 주간 연재를 중심으로 짜인 일본의 만화 체제에 맞추려면 어시스턴트라 불리는 제작 스태프가 3∼4명 정도는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우선 이런 인력을 수용할 일정한 넓이의 사무실이 필수인데, 전세 등의 주택 임대 개념이 없는 일본이다 보니 대부분 8∼9만 엔 이상 하는 비싼 월세를 내고 사무실을 임대해서 사용한다 … 작가들은 이 짧은 작가 수명 안에 만화를 그만둔 뒤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이익을 최대치로 만들어 둬야 하는 부담을 안는다 .. (21, 24쪽)
‘만화왕국 일본’ 이야기는, 만화가 스스로 낱권책 뒤에 붙이는 ‘뒷이야기’나 ‘끝말’을 보아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만화가 스스로 ‘도쿄에서 방을 얻을 때에 얼마나 힘든지’를 밝힙니다. ‘도쿄 아닌 시골에서 만화 그리는 삶’을 스스럼없이 밝혀 주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도쿄로 와서 만화를 그리면서 월세나 물건값이나 시끄러운 도시나 이런저런 것들을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대목도 만화가 스스로 다 밝힙니다. 이런 이야기는 ‘신인 작가’뿐 아니라 ‘인기 작가’인 분들도 곧잘 털어놓습니다.
.. 하류 사람들이 즐겨보는 매체에 무슨 표현이 어떻게 실리든 관심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일본만화·애니메이션에서 폭력이나 성 묘사가 자유로운 것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서라기보다는, 사회를 움직이는 권력층의 무관심에서 나오는 방치의 결과라는 설명도 가능하다 … 우익적 색채의 만화들은 아주 넓고 다양한 일본만화 독자층 중에서 이런 만화를 좋아하는 일부 고정 계층 독자들을 노리고 만든 것으로, 결코 폭넓은 대중적인 지지를 얻는 만화들은 아니다 .. (40, 65쪽)
일본만화는 ‘표현 자유’를 거리낌없이 펼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아마 ‘동인지’라면 그야말로 거리낌없이 펼치겠지요. ‘동인지’가 아닌 ‘잡지 연재’에서는 ‘표현 자유’를 모두 드러낸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본만화는 ‘표현 자유’가 아니라 ‘표현 한계를 찾으려고 애쓰는 몸짓’으로 바라보아야 옳지 싶습니다. ‘자유롭게 그리는 만화’라기보다 ‘한계가 없이 그리는 만화’라고 하겠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자유’라고 할 적에는 이웃을 괴롭히거나 옭아매지 않습니다. 《만화왕국 일본의 알려지지 않은 진실》에서도 다루는 ‘우익 색채 만화’는 ‘자유로운 표현’으로 그리는 만화가 아니라 ‘한계가 없는 표현’으로 그리는 만화입니다. ‘우익 색채 만화’는 일본에서도 다른 이웃을 괴롭히려는 뜻이 깃들고, 이웃 여러 나라를 깎아내리는 뜻이 깃듭니다.
일본만화를 읽을 적에는 ‘한계가 없이 그리려는 손길’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참말 일본만화는 ‘줄거리’와 ‘이야기’가 끝이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줄거리와 이야기가 아주 많습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이야기, 골프 이야기, 도시락 이야기, 전통술 이야기, 높은 봉우리를 타는 이야기, 소방관 이야기, 온갖 짐승 이야기, 먼 옛날 공룡 이야기, 새와 함께 사는 이야기, 인류 발자국 이야기, 연금술 이야기, 삶과 죽음 이야기, 미래 지구 이야기, 우주와 양자역학 이야기, 흙과 풀과 꽃 이야기, 바다 이야기, 어버이한테서 아픔을 물려받은 아이가 씩씩하게 서는 이야기, 고전 동화를 되살리는 이야기, 책과 책방과 헌책방과 도서관 이야기, …… 그야말로 끝이 없습니다.
《만화왕국 일본의 알려지지 않은 진실》을 쓴 이현석 님이 일본만화를 더 넓고 깊게 읽었다면, 이 작은 책도 더 넓고 깊게 엮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온갖 갈래 여러 일본만화를 두루 읽지는 못했다는 느낌이 짙습니다. 수천 가지도 아닌 수만 가지도 아닌 수십만 가지가 나오는 일본만화입니다. 이러한 갈래를 찬찬히 살피면서 ‘즐기는’ 눈길이 될 때에, 비로소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은 수수께끼’를 짚으리라 봅니다.
..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가장 쉽게 많은 이윤을 올리는 쪽은 따로 있다. 바로 콘텐츠를 받아서 송출하기만 하면 되는 방송국이다. 이들은 전파 사용료 등의 명목으로 대가를 받는데, 이 액수가 상당하다 … 굳이 왜 일본식의 만화, 일본의 시스템으로 그들과 경쟁을 하여야 하는가? 한국에만 존재하는 시스템, 우리가 만들어낸 규칙으로 게임을 한다면 우리네 만화는 일본과는 전혀 다르게 좋은 결과물을 양산할 수 있을 것이다 .. (102, 123∼124쪽)
《만화왕국 일본의 알려지지 않은 진실》을 읽으면서 ‘다카하시 신’ 만나보기 하나가 눈에 뜨입니다. 다른 이야기는 그동안 한국에도 ‘다 알려진’ 이야기이기 때문에 하나도 새롭지 않았습니다. ‘다카하시 신’이라는 만화가와 나눈 이야기에서 비로소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써 이렇게 일본 만화가 한 사람하고 만났어도 더 깊이 파고들어서 건져올릴 만한 이야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구나 싶습니다.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 “만화가를 하는 이상에는 어떤 일이든지 필요없는 경험이란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카하시 신/27쪽)
-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고집 부려서 실었는데, 결과적으로 인기도 전혀 없고 단행본도 팔리지 않게 되면, 그것도 물론 문제이거니와, 독자 무시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만 실어서 될 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독자는 정말로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매달 애독자 앙케이트도 열심히 하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역시 ‘독자가 가르쳐 주는 것’이지요.” (유리 고이치/83쪽)
애써 책 한 권을 내놓으려 한다면, 알맹이를 더 튼튼히 채워서 북돋울 수 있기를 빕니다. 일본 만화가 만나보기도 더 많은 작가하고 만나보면서 더 깊고 너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한결 나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책을 끝맺으면서 ‘일본 시스템’과 다른 ‘한국 시스템’이 있다고 한 줄로 짤막하게 말하는데, ‘한국 시스템’이 있고 이 틀거리가 ‘좋은 결과물’을 낳는다면, 이 틀거리가 무엇인지 따로 다루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한국에서 만화를 그리는 멋진 틀거리가 있다는 말을 고작 한 줄로 슬쩍 읊고 지나간다면, 일본만화와 한국만화가 어떻게 다른가를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일본만화와 한국만화가 ‘경쟁’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일본에서 만화를 그리고 책을 빚는 문화와 삶이 놀랍거나 대단하다면, 이러한 문화와 삶을 기쁘게 바라보면서 즐겁게 배울 수 있으면 됩니다. ‘만화왕국’이니 ‘만화대국’이니 하면서 괜히 멀리할 까닭이 없습니다. 만화로 보여줄 수 있는 ‘끝없는(한계 없는)’ 꿈과 노래와 사랑이 무엇인가를 바라볼 수 있으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4348.4.15.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