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46. 흐르면서 나아간다
나는 내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림을 그립니다. 내가 그리고 싶지 않은 그림은 그릴 수 없습니다. 너는 네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림을 그립니다. 네가 그리고 싶지 않은 그림을 그린다면, 이런 그림은 너한테 덧없습니다.
나는 네 그림을 흉내낼 까닭이 없습니다. 너는 내 그림을 베낄 까닭이 없습니다. 나는 네 사진을 따라할 까닭이 없습니다. 너는 내 사진을 좇을 까닭이 없습니다.
그런데, 꽤 많은 사진가들이 다른 사진가들을 흉내내거나 따르거나 베끼거나 훔치거나 좇습니다. 굳이 이렇게 해야 할까요? 이를테면, 로버트 프랭크 냄새가 나도록 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쿠델카나 살가도 비슷하게 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다른 사람이 다른 곳에서 찍은 사진’에서 비슷한 기운이 흐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른 곳에서 다른 것을 바라보았으나 서로 한마음이라 한다면 꼭 같구나 싶을 만한 사진이 놀랍게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르면서 하나되는 마음’이 아니라 한다면, 굳이 다른 사진가 발자국을 따라가거나 좇을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다른 아이 그림을 흉내내지 않습니다. 때때로 만화책이나 그림책에 나온 그림을 보고서 따라해 보려고도 하지만, 이렇게 따라해 보려고 하는 그림은 그리 재미나지 않아요. 왜 그런가 하면 이런 그림에는 ‘내 숨결이나 손길’이 깃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그림을 보고서 그리는 그림이라 하더라도 ‘내 숨결이나 손길’을 담을 때에 비로소 재미납니다. 내 숨결이나 손길이 깃들어야 비로소 ‘이야기’가 자라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흐르면서 찬찬히 나아갑니다. 그러니, 굳이 배우러 하지 마셔요. 천천히 흐르면 내 숨결이 드러납니다. 애써 좇거나 따라가려 하지 마셔요. 찬찬히 나아가면 내 이야기가 기쁘게 나타납니다. 4348.4.7.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