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46 ‘걸음마’와 ‘걸음’



  모든 아기는 걸음마를 디디면서 이 땅에 새롭게 서려 합니다. 걸음마는 아직 걸음이 되지 못한 몸짓이지만, 아기는 저를 낳은 어버이처럼 걷겠노라 하는 꿈을 키우니, 씩씩하게 두 다리로 서서 이 땅을 디디려 합니다. 아기는 제 힘을 써서 제 몸으로 우뚝 서려 합니다. 홀로 씩씩하게 서려 합니다. 그러니까, ‘홀가분하’게 서려고 ‘걸음마’를 뗍니다.


  아기가 ‘첫’ 걸음마를 뗀 뒤에는 ‘새’ 걸음마를 떼려고 애씁니다. 걸음마가 날마다 새롭도록 애씁니다. ‘첫걸음마’는 언제나 ‘새걸음마’로 나아갑니다. 걸어 보려고 애쓰고 힘쓰고 용쓰면서 나중에는 드디어 ‘걸음’이 됩니다. 어버이 손을 잡지 않고도 제법 먼 길을 혼자 걸어서 오갈 수 있습니다. 이때에 비로소 ‘걸음’이라고 합니다.


  걸음마를 떼면서 걸음을 할 수 있는 아이는, 맘마를 떼면서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걸음마요 맘마입니다. ‘밥’이 아닌 ‘맘마’입니다. 밥처럼 지어서 밥처럼 먹으라고 하는 맘마입니다. 왜냐하면, 아기는 이가 얼마 안 돋거나 없으며, 아이는 이가 아직 제대로 안 돋았기 때문입니다.


  아기와 아이가 떼는 걸음마는, 어른으로 치자면 ‘훈련’이라 할 만합니다. 어른도 어떤 낯선 일을 처음으로 할 적에는 서툴거나 어수룩합니다. 낯설기에 익숙하지 않아요. 어른도 일손을 익숙하게 하려면 하고 또 하고 다시 해야 합니다.


  손놀림이나 몸놀림이 익숙해지면, 이제부터는 새롭게 하려고 나섭니다. ‘똑같이’ 하려고 나서는 삶이 아닙니다. ‘새롭게’ 하려고 나서는 삶입니다. 아이들이 걸음마를 익히는 까닭은 ‘어른과 똑같이’ 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어른처럼 걸음을 떼’고 나서 ‘내 나름대로 새롭게 걸음을 지으’려는 뜻입니다. 어른들이 낯선 일을 마주하면서 손놀림과 몸놀림을 익숙하게 가다듬으려 하는 까닭도, 어른들 나름대로 ‘이 일을 새롭게 맞아들여서 새롭게 누리’려는 뜻입니다.


  그러면, 왜 걸음마나 맘마를 거칠까요? 왜 ‘훈련’을 할까요? ‘삶짓기’를 하려는 뜻입니다. 삶을 지으려는 뜻으로 ‘걸음마(첫 단추)’를 떼려 합니다. 첫 단추를 꿰면 다음 단추를 꿸 수 있고, 단추를 모두 꿰면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옷입기’는 ‘삶짓기’와 같습니다. ‘걸음 떼기’는 ‘삶짓기’와 같아요. 나한테 찾아드는 새로운 하루(오늘)를 그야말로 새롭게 맞이해서 새롭게 누리려는 마음으로 첫걸음을 떼려 하고, 이 첫걸음이 언제나 새걸음이 되도록 몸을 움직입니다.


  삶을 지으려고 하는 걸음마(훈련)입니다. ‘잘 걷는 선수’가 되려고 걸음마를 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틀’에 갇히려고 똑같은 걸음걸이를 익히려 하지 않습니다. 두 다리를 놀려 제대로 걸으려고 하는 까닭은, 내 마음과 몸을 제대로 다스려서 내 삶을 제대로 지을 뜻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걸음이 아닌 걸음마는 여러모로 서툽니다. 아직 삶이 아닌 훈련은 이모저모 서툽니다. 서툴지만 빙긋빙긋 웃으면서 걸음마를 떼려 합니다. 서툴지만 활짝활짝 웃으면서 훈련을 하려 합니다. 아이와 어른 모두 삶짓기로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우리 모두 삶짓기를 이루는 길로 씩씩하게 새 걸음을 내딛습니다. 4348.3.1.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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