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45 삶은 춤노래



  삶은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한마당이라고 할 만합니다. 다만, 틀에 박힌 춤이나 노래가 있는 곳이 아닙니다. 스스로 기쁨을 가꾸어 누리는 춤이요, 손수 즐거움을 지어서 나누는 노래일 때에, ‘삶은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한마당’으로 됩니다. 기쁨이 없는 춤이나 즐거움이 사라진 노래라 한다면, 쳇바퀴처럼 똑같은 굴레에 갇혀서 제자리걸음을 합니다.


  춤과 노래는 따로 있지 않습니다. 춤만 출 수 없고, 노래만 부를 수 없습니다. 아무리 기운차게 추는 춤이라도 노래가 함께하기 마련이고, 아무리 조용하게 부르는 노래라도 춤이 같이하기 마련입니다. 춤과 노래는 늘 함께 있습니다. 둘은 다르게 있는듯이 보이지만, 언제나 하나로 움직입니다.


  오늘날 문명사회에서는 춤꾼과 노래꾼이 연예인이나 대중가수라는 이름으로 따로 있습니다. ‘뒷춤꾼(백댄서)’이라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게다가, ‘입벙긋 노래꾼(립싱크 가수)’마저 있습니다. 춤이면서 춤이 아니고 마는 오늘날 문명사회이고, 노래이면서 노래가 아니고 마는 오늘날 방송과 문화입니다. 이리하여, 제도권 입시지옥 학교에 갇힌 아이들이나 제도권 톱니바퀴 월급쟁이 회사에 갇힌 어른들 누구나, 춤이 아닌 춤과 노래가 아닌 노래에 빠져듭니다. 스스로 굴레에 갇힌 하루이니, 굴레에 가두는 춤과 노래에 젖어듭니다.


  삶을 손수 짓는 사람은 춤과 노래를 손수 짓습니다.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흙을 만지면서 밥과 옷과 집을 손수 지은 사람은, 일하거나 놀다가 언제나 스스로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었습니다. 다섯 살 아이도 여든 살 할배도, 일하거나 놀다가 스스러 우러나오는 노래와 춤으로 한판 멋지게 어우러집니다. 이를 가리켜 ‘한마당’이요 ‘한놀이’이요 ‘한마당놀이’라고 합니다. ‘마당놀이’라고도 하고 ‘들놀이’라고도 합니다.


  장작으로 삼을 나무를 하면서도 노래를 부릅니다. 지게 가득 나무를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노래를 부릅니다. 왜냐하면, 제 삶을 제 손으로 지으니, 스스로 신이 나서 노래가 나와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텔레비전도 없었지요. 임금님이 부르라 하는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시골마을에는 임금님 손길이 안 닿아요. 책도 글도 모르지만, 흙을 알고 풀과 나무를 알며, 하늘과 바람을 알고, 물과 벌레와 짐승을 모두 아는 ‘숲사람(시골사람)’은 스스로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면서 춤사위를 잇습니다.


  절구를 빻든 베틀을 밟든 노래입니다. 다듬이질을 하든 밥을 짓든 노래입니다. 아이들도 소꿉놀이를 하거나 술래잡기를 하거나 언제나 노래입니다. 삶일 때에는, 삶에서 우러나오는 모든 몸짓에서 노래와 춤이 함께 흐드러집니다.


  삶은 춤노래입니다. 춤노래는 삶입니다. 춤꾼이나 노래꾼이 된다면 삶이 아니라 굴레(제도권)입니다. 어느 하나에 얽매이는 모습은 삶과 동떨어집니다. 언제나 모두 아우르고, 늘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합니다. 삶은 두레요 품앗이입니다. 삶은 웃음이요 이야기입니다. 기쁘게 춤추고 즐겁게 노래합니다. 기쁘게 가꾸는 삶이요, 즐겁게 나누는 사랑입니다.


  밥을 지어 아침저녁을 차리면서 엉덩이를 실룩거리거나 어깨를 들썩입니다. 콧노래가 흐릅니다. 다 함께 까르르 웃으면서 수저를 듭니다. 이야기꽃이 핍니다. 바로 이때에 삶입니다. 삶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춤과 노래는 바로 오늘 이곳에 있습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물려주는 삶이듯이,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는 춤과 노래입니다. 4348.3.5.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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