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44. 여러 빛이 아니어도 된다



  마당에서 날마다 풀을 뜯어서 밥상에 올립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마당에서 풀을 얻습니다. 마당과 밭이 있으면 누구라도 한 해 내내 싱그러운 풀을 얻습니다. 이 풀은 물에 헹구어 바로 먹어도 되고, 된장이나 간장으로 양념을 해서 무침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날마다 새로 뜯어서 먹으니, 저녁이 되어 남는 풀이 있으면, 또 엊저녁에 뜯어서 아침나절에 남는 풀이 있으면, 이 아이들을 밀반죽에 섞어서 부침개를 부칩니다.


  밀반죽에 풀을 잔뜩 넣으면 풀내음과 풀맛이 짙습니다. 밀반죽에 풀을 조금 넣으면 밀내음과 밀맛이 짙습니다. 풀을 잔뜩 넣은 부침개는 풀빛이 짙고, 풀을 조금 넣은 부침개는 밀빛이 짙습니다.


  우리 집에는 ‘밥을 먹는 입’이 넷이라, 부침개를 으레 너덧 장 부칩니다. 한 사람한테 한 장씩 돌아가는 몫입니다. 여덟 장이나 열두 장을 부칠 수도 있지만, 네 사람한테는 너덧 장이 꼭 알맞습니다. 더 먹을 수 있을 듯싶기도 하지만, 막상 부침개를 하고 보면 한 사람한테 한 장이 가장 알맞습니다.


  나는 으레 내 몫을 맨 마지막에 먹습니다. 아이들과 곁님이 배부르게 먹고 나서야 비로소 내 몫을 먹습니다. 아이들과 곁님이 먹을 적에는 ‘먹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하고, 모두 맛나게 먹고 제자리로 돌아가서 새로운 놀이를 할 적에, 나는 홀로 조용히 밥상맡에 앉아서 내 부침개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사진으로 찍는 빛은, 여러 빛이 아니어도 됩니다. 한 가지 빛이어도 즐겁고 두 가지 빛이어도 곱습니다. 세 가지 빛이든 네 가지 빛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떤 빛이든 모두 빛입니다. 어떤 빛이든 오롯이 빛이면서, 깊고 너른 고요한 숨결이 깃듭니다. 빛마다 새로운 숨결이 고요하게 흘러서 깊고 너른 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우리가 찍는 사진은 언제나 사랑스럽습니다. 4348.4.4.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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