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42. 새빛과 옛빛
봄을 맞이하면서 겨울이 물러납니다. 겨울이 되면서 가을이 저뭅니다. 가을이 될 무렵에는 여름이 끝나고, 여름이 될 적에는 봄이 스러집니다. 철이 바뀔 적마다 빛이 사뭇 바뀝니다. 봄에는 옅은 풀빛이고, 여름에는 짙은 풀빛입니다. 가을에는 노란 풀빛이라면, 겨울에는 누런 풀빛입니다. 겨울에는 때때로 눈이 내려서 하얗게 덮인 빛이 되기도 합니다.
겨우내 누렇게 바랜 풀줄기와 풀잎은 봄비를 맞으면서 반들반들 빛나다가 천천히 흙으로 돌아갑니다. 봄부터 겨울까지 이 땅에 있던 풀은 고요히 흙빛으로 바뀌어요. 마르고 시들어 흙으로 돌아가는 풀은 새로운 흙이 되면서 ‘흙빛’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시골에서 안 살기 마련이고, 햇볕을 적게 받거나 거의 안 받으며 삽니다. 지난날 사람들은 거의 모두 시골에서 살았고, 늘 햇볕을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사람들은 살빛이 하야스름합니다. 지난날 사람들은 살빛이 흙빛입니다.
새빛과 옛빛을 함께 만나는 봄입니다. 가만히 보면 철이 바뀔 적마다 새로운 빛과 오래된 빛이 어우러지는 무늬를 봅니다. 사람 사이에서는 어른과 아이한테서 새빛과 옛빛이 어우러질까요. 오래된 마을과 새로 세운 동네 사이에도 새빛과 옛빛이 흐드러질까요.
새로운 바람이 불면서 새로운 빛이 퍼집니다. 새로운 빛이 퍼지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자랍니다. 이제 겨울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그리고,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흐르면, 다시 새롭게 겨울 이야기를 펼칠 수 있겠지요. 4348.4.2.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