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5.3.27.
: 저녁에
- 저녁에 자전거를 탄다. 겨울이라면 벌써 깜깜한 저녁이었을 텐데 삼월 막바지이니 아직 해가 하늘에 걸린 저녁이다. 우체국은 문을 닫지 않았고, 아이들은 놀이터에 가 보고 싶지만, 우체국만 들러서 집으로 돌아와 저녁밥을 차려야 한다. 너희들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해가 넘어가면 배가 고플 텐데, 집으로 돌아가면서 얼마나 힘들겠니.
- 꽃바람을 마신다. 면소재지 중학교 건물 옆으로 벚꽃은 일찌감치 졌고, 개나리가 한창이다. 학교 울타리를 보면 개나리가 퍽 많다. 왜 학교 울타리로 개나리를 많이 심을까? 예전에는 울타리라면 으레 찔레나무나 탱자나무였는데, 이제 학교나 건물 울타리는 쇠로 된 가시그물이기 일쑤이고, 드문드문 개나무를 척척 박는구나 싶다.
- 멧자락 한쪽에는 철쭉꽃이 군데군데 피었다. 철쭉꽃이 핀 지 이레쯤 되었을까? 진달래꽃을 보기는 어렵다. 시골마다 ‘철쭉제’이니 ‘철쭉잔치’는 많이 하는데 ‘진달래잔치’를 하는 곳이 있는지 아리송하다. 그러고 보면, ‘매화꽃잔치’보다 ‘벚꽃잔치’가 훨씬 잦다. 벚꽃을 멀리할 까닭은 없지만, 이 나라 삶자락을 헤아린다면, ‘벚꽃잔치’뿐 아니라 ‘능금꽃잔치’와 ‘배꽃잔치’와 ‘앵두꽃잔치’와 ‘매화꽃잔치’와 ‘복숭아꽃잔치’와 ‘살구꽃잔치’를 두루 할 만하리라 느낀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