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42 이것 저것 그것
한국말에는 ‘이·그·저’가 있습니다. 다른 나라 말에도 ‘이·그·저’를 가리키는 낱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말처럼 ‘이·그·저’가 넓게 가지를 치면서 쓰이는 말은 없다고 느낍니다. 참말 한국말에서는 ‘이·그·저’를 붙여서 온갖 것을 다 나타냅니다. 맨 먼저 ‘이것·저것·그것’이 있어요. 여기에서 재미있는 대목이 하나 있는데, 낱으로 가리킬 적에는 ‘이·그·저’라 하는데, 이 말마디 뒤에 다른 말을 붙이면 ‘이·저·그’로 앞뒤가 바뀝니다.
이것 저것 그것
이이 저이 그이
이곳 저곳 그곳
이때 저때 그때
이날 저날 그날
이쪽 저쪽 그쪽
곰곰이 생각하면 이 실마리를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언제나 ‘이’ 하나입니다. ‘이’는 바로 ‘나’입니다. 처음에는 언제나 ‘하나’요 ‘이’이며 ‘나’입니다. ‘처음’에 ‘하나(이·나)’가 있어서, ‘이’를 바탕으로 ‘새로움’이 싹트고 ‘다른 하나(둘)’가 나오면서 ‘너’가 됩니다. 둘만 놓고 본다면 ‘이것’과 ‘그것’입니다. 이것과 그것은 ‘이때’와 ‘그때’이며, ‘이때’는 ‘오늘’이요, ‘그때’는 ‘어제’입니다. 처음 두 가지는 “오늘과 어제”입니다. 그래서, 둘만 놓고 헤아릴 적에는 “이와 그”입니다.
“이와 그(오늘과 어제)”일 때에는 아직 안 움직입니다. 하나에서 다른 하나가 나와서 “너와 나”로 되었을 뿐입니다. 이제, 너와 나 사이를 이으면서 새롭게 한 걸음을 내딛을 숨결이 찾아듭니다. 새로운 씨앗이 너와 나 사이에 놓여요. 이리하여, 비로소 ‘저’가 나오고, 저(저것·저곳·저때)는 바로 ‘모레(앞날)’입니다. 이리하여, 이와 그는 처음에 ‘이·그·저’였으나, 이내 ‘이것·저것·그것’으로 자리를 바꾸어요. 오늘(이)이 모레(저)로 가면서 어제(그)가 되거든요.
나와 너가 있기에 ‘우리’가 태어납니다. 나와 너가 있어서 둘은 ‘우리’로 거듭납니다. 한국말에서는 오직 두 사람이어도 ‘우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라는 낱말은 처음부터 너와 나를 아우르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니와 나 둘이 있을 적에 “우리 언니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어머니와 나 둘이 있을 적에도 “우리 어머니입니다” 하고 말하지요. 게다가 내가 혼자서 사는 집을 말할 적에도 “우리 집입니다” 하고 말해요. 혼자 사는 집이 왜 “우리 집”인가 하면, 이 말을 듣는 사람(너)과 나(말하는 쪽)를 아우르기에 ‘우리’가 되거든요.
오늘(이)과 어제(그)가 모이기에(만나기에) 모레(저)가 태어납니다. 오늘과 어제를 이어서 모레로 나아갑니다. 나와 너는 우리가 되어 아름다운 숨결로 거듭납니다. 나는 너와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기쁜 넋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4348.3.2.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