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찬물만 쓰는 빨래



  철이 바뀌면 바람이 바뀐다. 바람이 바뀌면서 철이 바뀐다고 할 수 있다. 여름이 저물고 가을로 접어들어 겨울이 다가올 즈음에는 뭍바람이 되고, 겨울이 저물며 봄이 다가올 즈음에는 바닷바람이 된다. 들풀은 한겨울에도 여러 날 볕이 포근하면 싹을 틔우고, 들꽃은 겨울 한복판에도 여러 날 볕이 따뜻하게 내리쬐면 꽃송이를 벌린다. 그러나 들풀이나 들꽃만 보아서는 겨울이 지나갔다고 느낄 수 없다. 꽃은 볕에 따라 피고 지기 때문이다. 철이 아주 바뀌었구나 하고 느끼려면 바람을 읽어야 한다. 바람이 바뀌면 비로소 철이 확 바뀌네 하고 알아채는데, 이때에는 온 들에 새로운 싹이 트고 나무마다 겨울눈이 터지려고 한다.


  철바람이 바뀐 지 한 달 즈음 되는 오늘은 오직 찬물로만 몸을 씻고 빨래를 한다. 찬물이 몸에 닿으면 오들오들 떨리지만, 이내 가라앉는다. 찬물로 개운하고 씻은 뒤 알몸으로 빨래를 한다. 복복 비비고 죽죽 짜서 탁탁 턴다. 새옷을 입은 뒤 빨래를 들고 마당으로 나가서 하나씩 넌다. 봄볕이 따뜻해서 빨래는 일찍 마른다. 아이들과 풀을 뜯고, 밥을 지은 뒤, 다시 기지개를 켜고 해바라기를 한다. 바야흐로 삼월이 저물고 사월이 다가오는구나. 4348.3.27.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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