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여우와 털장갑
니이미 난키치 지음, 손경란 옮김, 구로이켄 그림 / 한림출판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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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94



네 따뜻한 손으로

― 아기 여우의 털장갑

 니이미 난키치 글

 구로이 켄 그림

 손경란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1998.10.30.



  아이들은 따뜻한 손으로 어루만져 주면 아주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저희 손으로 동무나 동생을 쓰다듬어 주기를 좋아하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똑같이 어루만져 주고 싶습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어루만지는 손길은 늘 따뜻합니다. 아이가 어버이를 어루만지는 손길도 늘 따뜻합니다. 서로서로 따뜻한 숨결이 되어 만나고, 다 함께 사랑스러운 노래를 부릅니다.


  예부터 이러한 손길을 가리켜 ‘약손’이라 했는데, ‘藥’이라고 하는 한자가 한겨레 삶에 스며들기 앞서는 누구나 ‘사랑손’이라 말했으리라 느낍니다. 사랑으로 어루만지기에 아픈 데가 낫고, 사랑으로 쓰다듬기에 기쁜 웃음이 넘칩니다.



.. “엄마, 손이 꽁꽁 얼어버린 것 같아요. 손이 너무 시려워요.” 하며, 젖어서 빨개진 작은 두 손을 엄마 여우에게 내밀었습니다. 엄마 여우는 “호, 호.” 하고 입김을 불어 주고, 따뜻한 엄마의 손으로 살포시 감싸서 녹여 주었습니다..  (8쪽)




  곰곰이 따지면 ‘약손’은 그리 미덥지 못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아픈 사람은 ‘약’만 써서는 낫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거나 훌륭한 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이라고 하는 기운을 담지 않으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값지거나 멋진 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스러운 숨결을 넣지 않으면 보람이 없어요.


  말 한 마디로 아픈 데를 씻을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인데, 말 한 마디로 아픈 데가 도질 수 있습니다. 말 한 마디 때문에 아픈 데가 생기고, 말 한 마디를 듣고 나서 모든 앙금을 말끔히 씻습니다.


  우리는 ‘약’으로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삽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한테 ‘약손’이라는 말은 안 씁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우리는 모두 ‘사랑손’이라고 말합니다.



.. “사람들은 네가 여우라는 것을 알면 장갑을 팔려고 하지 않을 거란다. 오히려 너를 잡아서 우리에 가두어 버릴 거야. 사람이란 정말로 무섭거든.” “흐음.” ..  (14쪽)




  니이미 난키치 님이 글을 쓰고, 구로이 켄 님이 그림을 그린 《아기 여우의 털장갑》(한림출판사,1998)을 읽습니다. 번역이 여러모로 아쉽지만, 이야기는 따사롭습니다. 겨울을 처음으로 맞이한 아기 여우가 손이 시려워서 쩔쩔매니, 어미 여우는 아기 여우를 데리고 아기 여우 손(발)에 꼭 맞을 만한 장갑을 ‘사람 마을’에서 얻어 주고 싶습니다. 어미 여우가 손수 가게에 가면 걱정스럽지 않을 테지만, 어미 여우가 가면 어미 여우 손(발)에 맞는 장갑을 얻을 테지요. 그래서 조마조마한 마음을 누르면서 아기 여우가 스스로 제 장갑을 얻도록 심부름을 시킵니다.



.. 아기 여우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저건 분명히 사람 엄마의 목소리임에 틀림없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구요? 아기 여우가 잠을 청할 때도 늘 엄마 여우는 지금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장가를 불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  (24쪽)



  어미 여우는 그동안 겪은 일이 많아서 두렵습니다. 아기 여우는 아직 겪은 일이 없어서 안 두렵습니다. 어미 여우는 아기 여우가 사람한테 사로잡힐까 봐 걱정스럽습니다. 아기 여우는 사람이 무엇을 하는 어떤 목숨인지 모르기에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아기 여우는 모든 것이 궁금합니다. 아기 여우는 모두 다 새롭습니다. 아기 여우는 모든 것을 새롭게 알려고 합니다. 씩씩하게 나서고, 즐겁게 돌아봅니다. 다부지게 움직이고, 기쁘게 헤아립니다.




.. 엄마 여우는 걱정이 된 나머지 마을 어귀까지 나와서 아기 여우가 돌아오기를 이제나 저제나 하고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힘차게 달려오는 아기 여우를 본 엄마 여우는, 따뜻한 품에 꼬옥 끌어안아 주며 눈물이 날 만큼 기뻐했습니다 ..  (29쪽)



  아기 여우는 어떻게 어미 여우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어미 여우가 언제나 따사롭게 나누어 주는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기 여우한테는 오롯이 사랑이 흘러요. 사람을 나쁘게 여기지 않고, 사람한테 나쁜 짓을 할 뜻이 없습니다. 그저 사람이라고 하는 ‘새로운 이웃이나 동무’가 궁금할 뿐 아니라, 사람한테서 장갑을 얻고 싶습니다.


  아기 여우는 ‘사람 어른’이 ‘사람 아기’한테 자장노래를 들려주는 소리를 들으면서 문득 어미 여우를 떠올립니다. 그렇구나, 장갑을 얻었으니 얼른 돌아가야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여우 발바닥이 추위를 느끼는지 못 느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림책에 나오는 아기 여우는 새로운 빛을 보았습니다. 이러면서 새로운 보금자리로 돌아갑니다. 가슴속에 새로운 빛을 고즈넉하게 심을 테고, 이 빛은 천천히 아기 여우 품에서 자라면서 고요한 숨결을 이어받아 새로운 사랑으로 타오르겠지요.


  따뜻한 손길로 물려주는 사랑이 오래도록 흐르고 흘러서 새로운 사랑이 됩니다. 먼 옛날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물려주는 사랑이요, 오늘날 내가 내 아이한테 새로 물려주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늘 이 사랑을 먹고 나누면서 기쁘게 웃습니다. 4348.3.23.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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