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잔 인생 한입 3
라즈웰 호소키 지음, 김동욱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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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82



바람 한 줄기를 마시며

― 술 한 잔 인생 한 입 3

 라즈웰 호소키 글·그림

 김동욱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2.8.30.



  나는 어릴 적부터 냄새를 잘 못 맡았습니다. 나는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아주 어린 날부터 코가 나빴습니다. 코가 나쁘니 냄새를 잘 못 맡고, 냄새를 잘 못 맡으니 맛을 잘 못 느꼈으며, 숨조차 쉬기 어려웠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탓도 있을 테지만, 내가 어릴 적 뛰놀던 곳에는 언제나 큰짐차 배기가스와 흙먼지가 뒹굴었고, 수많은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이 가득했으며, 집과 학교 사이에 있던 연탄공장에서 늘 탄가루로 날렸습니다. 국민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교에서도 늘 공장(이라기보다 공단)을 옆에 낀 삶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나고 자랐으니, 아마 내 몸은 ‘냄새’를 받아들이기 몹시 싫어했겠구나 싶어요. 내 몸은 스스로 지키려고 냄새를 손사래쳤을 수 있습니다.



- “이런 대가족에 남자는 너 하나라. 날 왜 불렀는지 알 것 같다.” (14쪽)

- ‘역시 3000엔짜리로 사 갈까. 화창한 봄날에 모처럼 한잔 하는데 쩨쩨하게 그런 빈티 나는 술이나 마실 수야 없지.’ (37쪽)



  코는 늘 안 좋았으나, 때때로 코가 확 트이는 때가 있습니다. 매캐하거나 갑갑한 곳이 아닌, 싱그러운 풀과 나무가 있는 데에 닿으면 코가 확 트입니다. 버스나 전철을 타고 움직이더라도 이러한 기운을 코가 느낍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잠들었어도 ‘아, 바야흐로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곳에서 벗어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바람이 맑은 곳으로 접어들면, 내 코는 언제 그렇게 막히고 괴로웠는가 싶도록 확 트인 채 하늘바람을 넉넉히 받아들입니다. 매캐한 바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앞서, 내 몸에 깃들거나 쌓인 모든 앙금을 갈아치우려고 해요. 새로운 기운이 감돌고, 기쁜 숨결이 춤출 수 있도록 바람 한 줄기를 고맙게 마십니다.



- “그래도 기왕 돈 내고 들어온 건데,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봐야지, 아깝잖아요.” “카스미 씬 왜 그렇게 쩨쩨해? 그냥 잔디에서 마음껏 뒹굴대다 가는 요금이라 생각하면 되잖아.” (84쪽)



  라즈웰 호소키 님이 빚은 만화책 《술 한 잔 인생 한 입》(AK커뮤니케이션즈,2012) 셋째 권을 가만히 살펴봅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아저씨는 도시에서 여느 회사를 다니는 여느 일꾼입니다. 날마다 ‘술 한 잔’을 한다고 하는데, 곰곰이 들여다보면 ‘한 잔’이 아니라 ‘석 잔’쯤이라 할 테고, 석 잔조차 아닌 ‘서른 잔’이라고 할 만큼 술을 마십니다. 무어라고 할까요, 살아가는 기쁨이 술이라고 할까요. 술이 있기에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어 지내고, 술이 있으니 하루하루 일터에 나가며, 술이 있는 동안 다른 모든 일을 잊고 느긋하게 잠드는 이야기입니다.



- “나한테는 말이야, 스키야키는 전야제 같은 거라고. 스키야키는 술이 잘 안 들어가잖아. 금방 배도 부르고. 그렇지만, 다음날 남은 건 또 술안주로 딱이거든.” (187쪽)



  바람 한 줄기가 붑니다. 바람 한 줄기는 들판을 가득 채운 나락에 깃들어, 우리가 먹는 밥이 됩니다. 바람 한 줄기는 너른 바다를 가로지르면서, 우리가 먹는 물고기마다 스밉니다. 바람 한 줄기는 능금밭과 딸기밭을 지나며, 우리가 즐기는 능금과 딸기에 서립니다.


  우리는 술을 빌어 바람을 마십니다. 밥을 빌어 바람을 먹습니다. 고기와 열매를 빌어 바람을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늘 다른 목숨을 먹으면서 내 목숨을 잇습니다. 다른 목숨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다른 목숨을 살린 숨결이요 바람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흐르는 바람이 뭇목숨을 살리고, 뭇목숨을 살리는 바람이 이 목숨과 저 목숨 사이를 잇습니다. 모든 술맛과 물맛과 밥맛이란 바람맛입니다. 바람 한 줄기를 먹으면서 오늘 하루가 흐릅니다. 4348.3.1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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