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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슬럼프 완전판 1
토리야마 아키라 글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79
생각이 날개처럼 돋으려면
― 닥터 슬럼프 완전판 1
토리야마 아키라 글·그림
설은미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0.12.25.
2010년에 ‘완전판’으로 다시 나온 《닥터 슬럼프 완전판》(학산문화사,2010) 첫째 권을 곰곰이 읽습니다. 《은하패트롤 쟈코》는 아이들한테 읽혀도 재미있다고 느껴서 《닥터 슬럼프》도 장만해서 읽습니다. 그런데, 《닥터 슬럼프》는 그리 재미있지 않습니다. 줄거리 흐름에 따라 어떤 생각을 들려주려 하는가 하는 대목은 알 만하지만, 굳이 이렇게 이야기를 짜야 할까 싶고, 이러한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보여주어서 무엇이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불량아’라는 아이는 학교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수업을 하다가 대놓고 술을 마십니다. 로봇을 만든 박사는 ‘변태 잡지’를 아무렇지 않게 읽으며 집 곳곳에 둡니다. 일본 사회와 문화가 이러한 모습이라고 보여줄 만하고, ‘변태 잡지’와 ‘시사 잡지’가 다를 바 없다고 할 만하니, 어떤 잡지를 집에 두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닥터 슬럼프》에서는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서 삶을 짓는 기쁨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바보스러운 사회에서 다 같이 바보스럽게 뒹구는 이야기를 넉넉히 찾아보면서, 이러한 바보짓에서 우스꽝스러운 몸짓이 흐를 뿐입니다.
- “두렵다. 난 나의 재능이 두려워. 이토록 완벽한 인간형 로봇을 뚝딱 만들어 치우다니.” “바, 박사님! 날 수가 없어요!” “누가 날랬어? 굳이 날 필요 없잖아!” “못 나는 거야?” (8쪽)
생각이 날개처럼 돋으려면, 삶이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야 합니다. 생각이 날개를 달고 훨훨 날려면, 홀가분한 넋으로 홀가분한 마음과 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흔히 ‘자유로운 상상력’을 말하는데, ‘자유’란 무엇이고 ‘상상력’이란 무엇일까요? 아무것이든 닥치는 대로 할 수 있는 모습이 ‘자유’일까요? 무엇이든 만화로 그리거나 영화로 찍으면 ‘상상력’일까요?
좋거나 나쁘거나 옳거나 그른 금을 그으면서 서로 틀을 짓는 모습이라면, 이러한 틀짓기도 삶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이쪽으로만 가야 옳거나 저쪽으로만 가야 옳을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 “정말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내내 내 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녀!” “왜?” “그야 친구니까.” “누가 맘대로 친구야?” “헤헤헤, 친구란다! 우린 불량아야, 불량아!” (31쪽)
《닥터 슬럼프》에 나오는 박사가 바보스럽다거나, 펭귄마을 학교가 바보스럽다고 할 만하기에, 이러한 틀을 짠 만화책이 재미없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사회를 고스란히 담아서 보여주는 만화책이 재미없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나는 이 만화책을 보면서 웃음이 나오지 않고, 이 만화책을 보는 동안 노래가 흐르지 않습니다. 모두 쳇바퀴처럼 틀에 맞추어 움직이는 흐름을 그대로 두기에 재미없는 사회에서, 박사는 스스로 재미있는 무언가를 누리려고 로봇을 만들고 여러 기계를 만들어요. 그런데, 이런 기계를 자꾸자꾸 만들더라도 스스로 재미나지 않습니다. 따분한 삶에서 박사 스스로 이것저것 만들지만, 새로운 기계는 어느 한때 따분함을 달랠 뿐, 새로운 하루로 나아가는 실마리가 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박사는 아라레라는 로봇을 만들면서 이 아이한테 아무것도 가르치지 못합니다. 학교에 보내기는 하지만, 박사 스스로 아라레한테 아무런 삶을 보여주지 못하고, 아무런 사랑을 들려주지 못하며, 아무런 이야기를 나누어 주지 못해요.
- “거대 털벌레!” “아, 아니야. 저건 곰이라는 거야. 아기 곰일 때부터 길렀는데 저렇게 크게 자란 거야. 하지만 늘 저 작은 우리 안에 갇혀 있으니, 참 안됐어.” “나쁜 짓 했어?” “그런 건 아닌데.” (87쪽)
‘불량아’라고 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아무런 재미가 없고, 집이나 마을에서도 따로 재미가 없겠지요. 재미가 없으니 심심풀이를 찾아서 떠돌고, 심심풀이를 찾아서 떠돌기에, 스스로 이루는 삶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얼거리로 흐르는 《닥터 슬럼프》이고, 이쁘장한 그림과 여러 주인공이 나오기는 하지만, ‘새로움’이 드러나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만화책을 볼 때에 ‘만화’이기 때문에 쉽게 빠져듭니다. 재미있든 재미없든 그저 만화를 펼칩니다. 이야기가 있든 없든 그저 만화에 사로잡힙니다. 그냥 들여다보면서 길들거나 익숙하게 받아들입니다.
어른이라면, 축구라든지 야구라든지 이것저것 스스로 ‘취미’로 여겨서 즐깁니다. 사회의식에 젖어 여러 가지를 ‘다양한 문화’로 누립니다. 이 만화책이 ‘어른판’이라고만 한다면, 이 만화를 어른판으로 어른끼리 얼마든지 즐길 만하겠지요. 4348.3.11.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