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5.2.23.

 : 아버지 혼자 다녀와



- 설을 마치고 고흥으로 돌아왔다. 설을 앞두고 보일러 기름이 거의 바닥이 났다. 설날에 기름값을 마련하자고 생각했는데 기름값만큼 돈이 모이지는 못한다. 이달에도 작은아이 통장에 들어온 ‘양육수당’을 덜어서 기름을 넣기로 한다. 이래저래 더하면 되지. 아침 일찍 자전거를 몰고 면소재지 기름집으로 가려 한다. 바람이 그리 불지 않고 볕이 좋은데, 오늘은 어쩐지 두 아이가 아버지하고 함께 자전거마실을 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얘들아, 너희들 설 언저리에 자전거를 거의 못 탔는데, 안 타고 싶니? 도무지 자전거를 탈 뜻을 안 비치는 아이들을 억지로 데려갈 수는 없다. 그래서 오늘은 샛자전거와 수레를 떼기로 한다. 나 혼자 자전거를 몰기로 한다.


- 작은아이가 대문을 빼꼼 열고 “아버지, 잘 다녀오셔요.” 하면서 배시시 웃는다. 손가락을 깨물어 먹는다. 참말 오늘 너희들이 자전거마실에 아무 마음이 없구나. 그래, 아주 오랜만에 홀가분하게 자전거를 타 볼게.


- 큰아이는 이모한테서 받은 머리띠를 하면서 마당에서 뛰논다. 그래, 잘 다녀올게. 고맙다. 천천히 발판을 구른다. 아이들도, 샛자전거와 수레도, 아무것도 없이 달리는 자전거는 대단히 가볍다. 자전거가 워낙 이렇게 가볍던가 하고 새삼스레 생각한다. 샛자전거와 수레와 두 아이가 없이 홀로 달리니, 이 자전거로 우리 뒷산인 천등산도 꼭대기까지 씩씩하게 오를 만하겠다고 느낀다. 날마다 폭하게 바뀌는 바람을 먹는다. 바람을 타고 가뿐하게 면소재지를 다녀온다. 면소재지 기름집에서 기름값이 850원으로 내렸다. 달포 앞서 기름을 넣을 적에는 950원이었다. 살림돈 2만 원을 아끼는구나.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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