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に花 (單行本)
太田 蘭三 / 角川書店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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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이 영화는 디브이디가 없구나. 참 아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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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바나
死に花, Shinibana, 2004


  그루터기에 꽃이 핀다. 우람하게 자란 나무를 뎅겅 베고 나서 그루터기만 남지만, 이 그루터기에 꽃이 핀다. 몸통이 모두 잘렸어도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줄기가 하나 오르고, 새로운 줄기에서는 새로운 잎이 돋으며, 새로운 움이 트니, 그루터기에서도 꽃이 핀다.

  모든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줄기가 오르지는 않는다. 몸통이 뎅겅 잘린 뒤 그만 슬픔에 잠겨 죽거나 깊이 잠드는 그루터기가 있고, 몸통이 뎅겅 잘린 뒤에도 얼마든지 새 줄기를 올려서 새롭게 자라려는 그루터기가 있다.

  영화 〈그루터기꽃(시니바나死に花)〉를 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잔뜩 나오는 영화를 본다. 참말 이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이가 많다. 이 영화를 찍을 무렵만 하더라도 거의 다 일흔이 넘은 나이였다. 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이러한 영화를 찍었을까. 이 영화는 어떤 숨결을 속삭이려고 우리한테 찾아올까.

  겉보기로는 으리으리하다는 ‘양로원(실버타운)’에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하루하루 기쁜 삶일까? 으리으리하니까 기쁠까? 아니면, 으리으리한 곳에 버려진 채 사회와는 동떨어진 하루를 죽음을 바라보면서 걸어야 할까?

  삶은 돈으로 짓지 않는다. 기쁨은 돈이 끌어들이지 않는다. 사랑은 돈이 넉넉하대서 이루지 않는다. 삶과 기쁨과 사랑은 언제나 ‘어린이 같은 마음’이 되어 ‘씨앗 한 톨 심는 신나는 놀이’일 때에 스스로 일으킨다.

  아흔아홉 살을 맞이한 할아버지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아흔아홉 살을 기뻐할 살붙이가 곁에 없기 때문이다. 아흔아홉 살 할아버지네 살붙이는 어디에 있을까? 땅속에 있다. 왜 땅속에 있는가? 일본이 일으킨 엉터리 전쟁 때문에 방공호에 숨었다가 그만 네 사람이 한꺼번에 죽고 말았다. 혼자 어처구니없게 살아남았으니 할 말이 없을밖에 없다. 혼자 살아남은 채 쉰 해 남짓 목숨을 이었으니 그야말로 할 말이 없을 테지. 누구한테 말을 하나. 누구한테 무슨 말을 하나.

  양로원(또는 실버타운)에서 가까운 동무로 지내던 할아버지 한 사람이, 아주 튼튼해 보이던 할아버지 한 사람이 갑작스레 일찍 숨을 거둔다. 그리고 이 할아버지는 다른 동무 할아버지한테 꿈을 한 가지 남긴다. ‘은행털이’를 하라는 꿈을 남긴다. 할아버지들은 뜻을 모은다. 양로원(또는 실버타운)에서 할 일이 하나도 없이, 술만 마시거나 여자를 밝히거나 책만 파면서 따분한 하루였는데, 비로소 할 일이 생겼다.

  그루터기에 꽃이 핀다. 그루터기 스스로 꽃을 피우려는 마음이 되기에 꽃을 피운다. 그루터기가 그저 시들시들거리다가 숨을 거둔다. 그루터기 스스로 아무런 꿈을 마음에 담지 못했기에 그대로 숨을 거둔다. 삶과 죽음은 늘 함께 있다. 삶과 죽음은 서로 동떨어지지 않는다. 삶을 생각하기에 삶이요, 죽음을 생각하니까 죽음이다. 목숨이 붙었기에 삶이 아니다. 꿈을 짓는 생각이 있는 사람만 언제나 삶이다. 4348.2.1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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