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라 런
톰 튀크베어 외 감독, 니나 페트리 외 출연 / 썬엔터테인먼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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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 롤라 (롤라 런)
Run Lola Run, Lola Rennt, 1998


  영화 〈달려 롤라(롤라 런, Run Lola Run, Lola Rennt)〉를 보면 세 가지 이야기가 흐른다. 다 같은 사람들이 나오지만 다 다른 이야기가 흐른다. 다 같은 사람들이 다 같은 때에 살지만 다 다른 이야기가 흐른다. 왜 그럴까? 세 가지 이야기를 보면, 세 가지 때에 세 가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몸짓이 달라지고, 몸짓이 달라지니 ‘아주 작은 몸짓’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나는 오늘 무엇을 하는가? 아침에 일어나서 기침을 하는가?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짓는가? 아침에 일어나서 노래를 부르는가? 아침에 골을 부리거나 이맛살을 찡그리면 하루는 어떻게 될까? 아침에 아이들을 안고 어르면서 입맞추면 하루는 어떻게 될까? 아침에 밭에 가서 풀을 뜯고 맑은 바람을 마시면 하루는 어떻게 될까?

  날마다 똑같은 몸짓으로 똑같은 생각을 한다면 내 하루는 늘 똑같을 수밖에 없다. 날마다 새로운 몸짓으로 새로운 생각을 한다면 내 하루는 늘 새로울 수밖에 없다.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생각하지 않기에 아무것도 못 하거나 못 이루고 만다. 생각하기에 모든 것을 이룬다. 생각하기에 언제 어디에서나 늘 무엇이든 이룬다.

  영화 〈달려 롤라〉에서 처음에는 롤라가 아무 생각이 없다. 무턱대고 아버지한테 기대고, 무턱대고 짝꿍한테 다가가려고만 한다. 이리하여 롤라가 죽는다. 이때, 죽음 문턱에 닿는 롤라는 이대로 죽을 수 없다고 끝없이 생각하면서 온힘을 쏟고, 이 힘에 따라 롤라는 ‘둘째 길’에 들어선다. 둘째 길에서 롤라는 조금 더 생각한다. 무턱대고 아버지한테 기대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이 얕다. 얕은 생각으로 뜻을 이루려 하니, 어이없이 짝꿍이 차에 받혀 죽는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때 롤라는 다시금 가없는 생각을 한다. 다시금 이대로 끝낼 수 없다고 생각하며 젖 먹던 힘을 짜내고, 어머니 뱃속에 있던 기운까지 쏟아내면서 ‘셋째 길’에 들어선다. 셋째 길에서 롤라는 서두르지 않는다. 셋째 길에 들어선 롤라는 앞선 두 길에서와 ‘똑같이’ 달리지만, 처음부터 달림새가 다르다. 외곬에서 사나운 개와 장난꾸러기 위로 훨훨 날아서 계단을 가로지른다. 둘레를 가만히 살피면서 달린다. 롤라 혼자만 이 땅에 있지 않다고 느끼면서 신나게 달린다. 롤라는 생각하고 다시 생각한다. 철없이 아버지한테만 기대려 하던 ‘내 모습’을 제대로 바라본다. 나를 나대로 바라볼 수 있는 롤라는 더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스스로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이제 롤라는 ‘롤렛 게임’을 하는 카지노에 들어간다. 카지노라는 곳은 얼마나 대단한 곳인가? 바보스레 휩쓸리면 온 집안을 들어먹지만, 온마음을 쏟으면 온갖 것을 내 것으로 삼을 수 있다.

  롤라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한탕을 얻으려’는 생각이 아니라, ‘내 뜻대로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리하여, 첫 열매를 얻는다. 첫 열매를 얻고 나서 롤라는 이제 ‘내 길’을 안다. 처음 카지노에 들어설 적부터 ‘그런 차림’이면 안 된다고 하지만, 롤라한테는 ‘안 된다는 생각’이 없고, 100마르크에서 돈이 모자라지만 ‘모자라다는 생각’이 없다. 게다가, 카지노에 들어선 다음 롤라를 내쫓으려는 사람들한테 ‘나는 내가 할 것이 있다’는 뜻을 다부지면서 가볍게 보드라운 말로 읊는다. 이러고 나서 롤라는 꼭 한 가지를 한다. 이제껏 롤라한테 있던 모든 기운을 한꺼번에 쏟아서 숨을 내뱉는다. 숨을 외친다. 숨을 터뜨린다. 롤라가 내뱉고 외치며 터뜨리는 숨은 카지노에 있는 모든 유리잔을 깨뜨리고 모든 사람들이 귀청이 떨어지도록 할 만큼 놀랍다. 새롭다. 이리하여 롤라가 바라는 숫자대로 롤렛이 끝나고, 롤라는 이녁 짝꿍을 살릴 돈을 얻는다.

  그러면 영화는 어떻게 끝을 맺을까? 롤라가 다 했으니 이대로 끝날까? 아니다. 롤라는 둘레 사람들을 바꾸면서 제 삶을 바꾸었다. 이리하여, 롤라 짝꿍도 롤라가 내뿜은 사랑스러운 기운을 받아서 스스로 바뀌었다. 총을 내려놓는다. 잃었던 것을 되찾는다. 그리고, 깨끗하게 손을 씻는다. 어둠에서 빛이 되고, 빛에서 새로운 길로 간다. 롤라와 짝꿍은 가볍게 다시 만나고, 모든 앙금을 털었으니 홀가분하게 웃으면서 손을 맞잡고 아주 새로운 길을 걷는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엮어서 보여주는 영화인 〈달려 롤라〉이다. 달리면 된다. 무턱대고 달리면 안 되지만, 생각과 생각을 거듭하면서 사랑을 가슴에 담아서 달리면 다 된다. 4348.2.14.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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