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찾아온 행운 내 아이가 읽는 책 9
엘리자베스 허니 글 그림, 김은정 옮김 / 제삼기획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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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79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이루다

― 나에게 찾아온 행운

 엘리자베스 허니 글·그림

 김은정 옮김

 제삼기획 펴냄, 2003.6.17



  ‘양자 물리학’을 한 마디로 간추린다면, “내가 생각하는 대로 모두 이룬다”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내 삶은 내가 생각한 대로 이루어졌다”입니다. 엘리자베스 허니 님이 빚은 사랑스러운 그림책 《나에게 찾아온 행운》(제삼기획,2003)을 아이들과 보다가 문득 양자 물리학이 떠오릅니다. 왜냐하면, 이 그림책에 나오는 가시내 ‘수지’한테 찾아온 행운이란, 바로 수지라는 아이가 스스로 빚어서 누린 기쁨이라고 할 만하기 때문입니다.



.. “시시한 도시야, 안녕!” 알렉스가 소리쳤습니다. “푸른 바다야, 반가워!” 수지가 노래했습니다. 터키는 물안경을 깔고 앉고, 사촌 빈은 용돈을 세고, 엄마는 아빠에게 뒷문을 잠갔는지 물었습니다 ..  (2쪽)




  그림책 《나에게 찾아온 행운》을 엽니다. 첫머리를 보면, 도시에 살던 아이들과 어른들이 도시를 떠나요. 다만, 집을 옮기지는 않고, 여름철 물놀이를 갑니다. 아이들이 외친 소리 그대로 ‘시시한 도시’입니다. 참말 도시란 시시하지요. 도시에 무엇이 있을까요? 도시에 바다가 있나요? 도시에 숲이 있나요? 도시에 들이 있나요? 도시에 ‘타고 오를 만한 나무’가 있나요? 도시에 골짜기가 있나요? 도시에 물장구를 칠 냇물이 있나요? 도시에 두 손으로 떠서 마실 만한 샘물이 있나요? 도시에 개구리가 사나요, 메뚜기가 사나요? 참말 도시에 무엇이 있을까요?


  도시에는 극장이 있고, 피시방이 넘치며, 술집과 찻집과 옷집과 맛집이 그득그득 있습니다. 도시에는 학교와 도서관이 많고, 자동차도 많으며, 온갖 가게와 건물이 빼곡하게 있습니다.


  도시에는 바퀴벌레가 많습니다. 도시에도 개미는 많습니다. 그러나, 도시에는 나비조차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도시에 잠자리가 몇 마리 날더라도 그뿐이요, 도시에 온갖 새가 깃들지 못해요.





.. “잠꾸러기들, 어서 일어나야지!” 아빠가 아이들을 깨웠습니다. “낚시하러 갈 사람?” “저요!” 빈이 말했습니다. “전 옆집 친구들이랑 놀래요.” 알렉스가 하품을 하며 말했습니다. “깨우지 마세요, 아빠! 좋은 꿈 꾸고 있는데.” 터키가 중얼거렸습니다. “음, 저는 뭐 할 건지 결정했어요. 낚시하러 갈 거예요!” 수지가 말했습니다 ..  (9쪽)



  도시가 시시하다면, 왜 사람들은 도시에서 살까요? 사람들 스스로 시시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나쁘게 보려고 하는 말이 아니에요. 사람들 스스로 ‘시시한 삶’을 골랐기 때문에 도시에서 살아요.


  이렇게 말하니 참으로 도시사람을 나쁘게 말하는 듯하구나 싶지만, 참말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스스로 쳇바퀴에 갇히려고 하기 때문에 도시에서 삽니다. 그러면, 시골에서 살면 쳇바퀴가 아닐까요? 네, 시골에서 살아도 스스로 쳇바퀴를 뒤집어쓰면 쳇바퀴입니다. 농약 치고 비료 뿌리고 비닐 씌우고 하는 쳇바퀴에 스스로 갇히면, 시골에서 살아도 그예 시시한 하루입니다. 농약과 비료와 비닐에 무엇이 따를까요? 빈 농약병과 빈 비료푸대와 푸석거리는 비닐쓰레기입니다. 농약과 비료와 비닐로 망가진 논밭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요. 농약과 비료와 비닐이 구르는 논밭에는 풀벌레도 멧새도 숲짐승도 없어요.


  ‘시시한 삶’이란 새로움이 없는 삶입니다. ‘시시한 사람’이란 새로움을 찾지 않으면서 날마다 똑같은 몸짓만 되풀이하는 사람입니다.




.. 수지는 두 눈을 깜빡이며 눈물을 참았습니다. 바다는 저렇게 넓은데 수지의 물고기는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수지는 물 속을 노려보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잔잔한 은빛 물결 속에 시커먼 모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빠 저것 보세요! 저건, 고래 같은데.” ..  (24∼25쪽)



  그림책 《나에게 찾아온 행운》에 나오는 가시내 수지는 날마다 낚시를 합니다. 그렇지만, 도시를 떠나 애써 바다로 나들이를 왔는데, 수지는 날마다 아무것도 못 낚아요. 다들 여러 물고기를 낚고, 낚은 물고기로 맛나게 밥을 먹는데, 수지는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빈손입니다. 빈손인 수지는 끝내 바다를 노려봅니다. 또는,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나는 빈손으로 다시 도시로 돌아갈 생각으로 바다에 오지 않았어!’ 하는 엄청나게 큰 외침을 마음속으로 우렁차게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때, 아주 놀랍고 새로운 일이 수지한테 찾아와요.



.. “고기 잡았구나?” “아니, 고기보다 훨씬 좋은 거. 고기는 아무나 잡잖아.” 수지는 그렇게 말하며 깡충깡충 뛰엇습니다. “물고기 육십 마리보다 더 커! 우리 집보다도 훨씬 더 크다!” ..  (31쪽)



  다른 어느 누구도 고래를 보지 못했습니다. 오직 수지만 고래를 보았습니다. 다른 어느 누구도 수지를 믿지 않았습니다. 수지네 아버지조차 수지를 믿지 않았습니다. 수지네 식구가 놀러온 바닷가는 고래가 나오지 않는 바다라는 말만 할 뿐입니다. 그런데, 수지는 자꾸 보고 또 보지요. 이러다가 다른 사람도 수지가 바라보는 곳을 바라보다가 고래를 보아요. 이제는 수지가 거짓말을 하지 않은 줄 알아채면서 다 함께 놀랍니다. 수지가 고래를 보았고 말했으며 외쳤기에, 다른 사람도 비로소 고래를 볼 수 있습니다.


  수지는 수지한테 즐거운 일을 수지 스스로 끌어들였습니다. 물고기 몇 마리 낚는 일이란 아무것도 아닌 줄 수지 스스로 알기에, 수지는 너른 바다에서 그야말로 ‘너른 숨결’인 고래가 찾아오도록 했습니다. 그러니까, 수지는 고래를 낚은 셈이고, 고래를 낚은 뒤 바다에 고이 돌려준 셈입니다. 아름다운 생각을 스스로 지을 줄 아는 수지는, 앞으로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아름다운 삶을 아주 멋지고 사랑스레 지으리라 봅니다. 4348.2.13.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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