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하느라 전화 못 받는 아버지



  오늘은 큰가방을 빨 생각이었다. 큰가방에다가 곁님 옷가지랑 이럭저럭 꾸려서 빨래기계를 쓰려 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하늘이 꾸물거린다. 이런 날에는 가방을 빨지 못한다. 가방이 잘 마르려면 해가 나야 하니까. 하는 수 없이 빨래를 하루 미룰까 하다가, 자잘한 옷가지 몇은 손으로 빨까 싶어서 조물조물 주무른다. 아마 이동안에 전화가 온 듯하다. 그렇지만, 빨래에 마음을 듬뿍 쏟느라 전화기 울리는 소리를 못 듣는다. 빨래를 하면서 생각을 가다듬는다.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내가 하는 일이 어떠한 숨결인지 헤아린다. 빨래를 마치고 기쁘게 넌다. 방바닥에 큰아이가 바이올린을 펼쳐 놓았기에 하마터면 밟을 뻔했다. 큰아이를 불러서 나즈막하게 타이른다. 얘 얘, 이렇게 바닥에 널브러뜨리면 밟을 수 있잖니, 얼른 상자에 담으렴. 척척 빨래를 너는 동안 쪽글이 온다. 빨래를 널 적에는 비빔질도 헹굼질도 안 하니 쪽글 울리는 소리를 듣는다. 빨래를 모두 널고 나서 홀가분하게 쪽글에 답글을 보낸다. 4348.1.29.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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