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갈아입으려 하는데



  열흘 동안 배움마실을 한 뒤, 열이틀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큰아이는 아버지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다고 한눈에 느꼈다. 참말 얼마나 눈이 빠졌을까. 그런데 말이야, 우리한테는 모두 ‘마음으로 보는 눈’이 있어서, ‘네 몸에 달린 눈’은 쏘옥 빠지려 했을는지 모르지만, 네 마음으로 보는 눈은 너를 씩씩하게 이끌었으리라 느껴.


  가방을 풀고, 읍내에서 장만한 먹을거리도 푼 뒤, 아이들과 놀고 몸을 씻고 이것저것 한 끝에 비로소 숨을 돌리면서 옷을 갈아입는데, 내 웃옷자락 쌓은 곳에서 무언가 종이랑 여러 놀잇감이 손에 잡힌다. 여기 무엇이 있지? 아무것도 없어야 할 텐데? 옷자락을 바닥에 놓고 가만히 펼친다. 큰아이는 잠자리에 누웠지만 아직 잠들지 않고 실눈을 뜨면서 아버지를 지켜보는 눈치이다. 웃옷자락에 있는 여러 가지를 살짝 펼쳐서 보니, 큰아이가 아버지를 보고 싶은 마음을 쪽글로 썼을 뿐 아니라, 아버지한테 주는 선물을 잔뜩 놓았다. 아, 그렇구나.


  웃옷자락을 천천히 여민다. 그러고는 다시 제자리에 올린다. 다른 옷을 한 벌 꺼내어 입는다. 잠든 척하는 큰아이 이마를 쓸어넘긴다. 옆방 청소를 마저 끝낸 뒤 아이들 사이에 눕는다. 큰아이는 이제서야 마음이 놓이는지, 기쁘게 잠이 들어 깊디깊게 꿈나라로 간다. 4348.1.2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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