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 목소리 듣기
밤이 깊은 열 시 사십 분에 큰아이 전화를 받는다. 아버지는 지난 15일부터 22일이 되도록 집을 비우고 공부를 하러 나왔다. 아버지는 앞으로 며칠 더 공부를 해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아버지하고 하루나 이틀쯤 떨어진 채 지낸 적은 더러 있으나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진 채 지낸 적은 없다. 누구보다 큰아이가 서운해 하고 쓸쓸해 하며 힘들어 할 수 있겠다고 문득 느낀다. 큰아이 목소리를 들으니, 이 모든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모진 아버지가 아니다. 나는 사랑스러운 아버지이다. 그래서 여덟 살 큰아이한테 말한다. “벼리야, 아버지는 공부하러 왔어. 벼리한테 가르칠 것들을 배우러 공부를 해. 앞으로 며칠 더 공부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 아버지는 우리가 즐겁게 나눌 아름다운 이야기를 배우니까, 다 괜찮아. 동생하고 함께 웃고 노래하면서 잘 놀면 돼. 아버지가 보고 싶으면 아버지를 그림으로 그려.” “아버지 그림으로 그렸는데, 안 오잖아.” “우리 집도 그려 주고, 우리 숲도 그려 줘.”
아이야, 네가 오늘은 울지만, 모레에는 웃으리라 느껴. 네 눈물과 울음이 바로 네 웃음과 사랑을 낳지. 기다리렴. 아버지가 그동안 너한테 노래는 가르쳤지만, 춤은 못 가르쳤지. 아버지가 그동안 너한테 자전거는 가르쳤지만, 물구나무서기는 못 가르쳤지. 아버지는 너한테 아주 새롭고 모두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사랑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이끄는 배움길에 나섰단다. 그렇다고 이 배움길을 걷느라 집을 몇 달씩 비우지는 않아. 이번에는 열흘을 비우지. 열흘이 길다면 길 텐데, 짧다면 하염없이 짧아. 언제나 곱게 웃고 노래하면서 뛰노는 네 숨결을 잘 지켜보고 아끼기를 빌어. 씩씩하고 튼튼한 우리 집 사름벼리야. 4348.1.2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