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똥



  시골에서 살며 풀을 즐겨먹으면 똥빛이 푸릅니다. 풀을 먹으니 풀빛 똥을 누지요. 고기를 먹으면 고기 빛깔이 감도는 똥을 누고, 라면을 먹으면 라면 빛깔이 흐르는 똥을 누어요.


  그런데 며칠 앞서부터 내가 누는 똥이 새로운 빛깔이 됩니다. 처음에는 갸우뚱하게 여겼습니다. 나는 요 며칠 동안 ‘내가 늘 즐겨먹던 풀’을 못 먹었는데, 람타공부를 하러 고흥을 떠나 강화에 있는 유스호스텔에 엿새째 머물면서 풀이라고는 구경도 못하고, 어쩌다가 콩나물이나 시금치나 당근 몇 조각을 겨우 먹을 뿐인데, 날마다 고기에 햄에 달걀에 이런 것만 먹는데, 게다가 그동안 몸에서 안 받아서 못 먹던 김치도 먹는데, 어떻게 내 똥빛이 푸른가 하고 갸우뚱갸우뚱 바라보았습니다.


  오늘 저녁이 되니 비로소 깨닫습니다. 나는 나한테 말을 걸었어요. 나는 ‘푸른 바람’이 되자고 말을 걸었어요. ‘푸른 바람으로서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 파란 별이 되자’는 말을 내가 나한테 했어요. 그러니까, 이 말을 내가 나한테 처음으로 한 날부터 나는 푸른 똥을 누었습니다. 내가 푸른 숨결이니 무엇을 몸에 집어넣더라도 푸른 똥이 됩니다.


  내 몸 한곳이 바뀌는 모습입니다. 어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고, 예전에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나를 지켜보면서, 내가 나한테 들려줄 말을 생각합니다. 내가 나한테 들려주는 말을 씨앗으로 삼아 내 마음에 생각으로 심고, 이 생각이 자라서 움직입니다. 나는 나대로 내 삶을 누리려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4348.1.2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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