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실험



  국민학교에서 과학실험을 합니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이니 1980년대 첫무렵입니다. 몇 년 몇 월 몇 일인지까지 떠오르지 않으나, 국민학교 여섯 해 내내 과학실험이면 언제나 이와 같았습니다. 어떠했느냐 하면, 과학실이라는 데에 가서 과학실험을 하는데, 맨 처음에는 교사가 ‘그저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지켜보면서 결과를 적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실험 규칙과 차례에 맞추어서 하나하나 하되, 내 마음대로 지켜봅니다. 교과서대로 지켜보지 않고, 교과서는 모르는 채 아주 홀가분하게 지켜봅니다.


  과학실험을 마치고 나서, 그러니까 과학실험을 하는 내내 지켜본 결과를 모두 꼼꼼하게 적지요. 이렇게 적은 뒤 교사한테 보여주면 “뭐야? 이 터무니없는 숫자는?” 하면서 벼락처럼 소리를 지릅니다. 나만 이런 숫자가 나오지 않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죄 터무니없다는 숫자를 적었다고 교사가 꽥꽥 소리를 지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실에서 커다란 몽둥이로 실컷 두들겨맞습니다.


  교사는 맨 처음에 우리한테 말했지요. ‘결과가 어떻게 나오도록 하지 말고,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지켜보고 나서, 이렇게 나온 결과를 적으라’ 하고 말했지요. 그래서 우리는 모두 ‘마음대로’ 실험을 했고, ‘마음대로’ 결과가 나왔으며, 우리가 한 결과에서 나오는 숫자는 모두 달랐습니다. 모든 아이가 그야말로 모두 다른 숫자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서너 아이는 ‘교과서에 나온 실험결과 숫자’가 나옵니다. 이때 아주 크게 놀랐습니다. 교과서에 나온 실험결과 숫자를 적은 아이는 교사한테서 칭찬을 받으면서 ‘한 대도 안 맞’습니다. 나를 비롯한 다른 모든 아이들은 엉덩이가 시뻘개지도록 커다란 몽둥이로 맞고, ‘아이 짜증 나. 과학실험 참말 싫어. 과학실 싫어.’ 하고 말합니다.


  나중에 동무한테 묻습니다. ‘교과서에 나온 실험결과 숫자’를 적어서 매를 안 맞은 동무한테 묻습니다. “야, 너 대단하다. 어떻게 너는 맞혔니?” “쉿. 다른 아이한테 말하지 마. 나는 전과에 나온 숫자를 외워서 적었어. 나도 실험결과 숫자는 전과에 나온 숫자하고 달라.”


  우리는 무슨 과학실험을 하는 셈일까요? 우리 사회는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칠까요? 우리 학교는 어떤 짓을 하는 셈일까요? 우리 학교교육은 아이를 어떤 넋으로 몰아세우거나 윽박지르면서 ‘터무니없이 아무것도 모르는 종(노예)’이 되도록 길들이는 셈일까요?


  그래서 나는 국민학교 여섯 해, 다음으로 중학교 세 해, 그 다음으로 고등학교 세 해, 열두 해에 걸쳐 ‘과학실험’을 해야 하는 때에는 늘 ‘거짓 숫자(전과나 참고서에 나온 숫자)’를 적어서 안 얻어맞는 길을 살폈고, 시험을 치를 적에도 ‘거짓 숫자’를 외워서 적었으며, 과학실험을 해야 하면 ‘내 마음 그대로 내 눈으로 지켜보는 숨결’을 몰래 지켰습니다. 4348.1.2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람타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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