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에 걸린 전화기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13
에리히 캐스트너 지음, 발터 트리어 그림 / 시공주니어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시를 사랑하는 시 50



내 손은 무지개

― 마법에 걸린 전화기

 에리히 캐스트너 글

 발터 트리어 그림

 김서정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1995.5.27.



  내 손은 무지개입니다. 그래서 내 손을 가만히 바라보면, 내 손에서 조그마한 무지개가 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무지개가 안 보인다고요? 그렇다면, 내 손을 제대로 안 보았다는 뜻입니다. 찬찬히 마음을 기울여서 다시 들여다보셔요. 내 손에서 피어나는 무지개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내 손은 무지개입니다. 그래서 내 손을 움직이면, 내 손에서 조그미한 무지개가 이곳저곳으로 퍼지는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지개를 못 느끼겠다고요? 그렇다면, 내 손을 제대로 안 썼다는 뜻입니다. 즐겁고 신나게 손을 써 보셔요.


  내 손은 무지개입니다. 그래서 내 손을 뻗으면, 내 손에 닿는 네 손에 두근두근 따순 기운이 흐릅니다. 내 손에 닿는 나무와 풀과 꽃은 기쁨이 넘쳐서 노래합니다. 내 손에 닿는 흙은 기름진 숨결을 얻어 새롭게 깨어납니다.



.. 그런데 엄마가 집을 나서기가 무섭게 / 빨간 머리 그레테가 소리를 질렀어. / “너희들, 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놀이가 뭔지 아니? / 나랑 같이 전화기 있는 데로 가 보자.” ..  (마법에 걸린 전화기)



  내 손은 무지개이기 때문에 빛납니다. 낮에도 빛나고 밤에도 빛납니다. 꽃송이를 쓰다듬으면서 빛나고, 꽃잎을 어루만지면서 빛납니다. 내 손은 무지개이기 때문에 환합니다. 풀잎을 뜯으면서 빛나고, 풀줄기를 스치면서 환합니다. 내 손은 무지개이기 때문에 따스합니다. 밥을 지으면서 따스하고, 밥을 먹으면서 따스합니다. 내 손은 무지개이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빙그레 웃으면서 아름답고, 기쁘게 노래하면서 아름답습니다.



.. 아돌프는 프리츠를 실컷 두들겨 패면서 / 그게 굉장히 재미있는 놀이라고 생각했어. / 프리츠가 윗도리를 벗으면서 / “이제 그만 하시지!” 하고 말할 때까지는 ..  (권투 챔피언)



  무지개를 잡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우리 보금자리에 있으면 됩니다. 무지개를 보려면 어디에 있어야 할까요? 우리 살림터에 있으면 됩니다. 무지개를 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두 눈을 바라보면서 우리 손을 느끼면 됩니다.


  어느 먼 곳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곳에 있으면서 기쁩니다. 어느 한때에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늘 이곳에서 즐겁습니다.


  에리히 캐스트너 님이 쓴 재미난 이야기를 동시처럼 묶은 《마법에 걸린 전화기》(시공주니어,1995)를 읽습니다. 책이름 그대로 전화기는 마법에 걸립니다. 마법에 걸린 전화기를 손에 쥐면, 전화를 거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마법에 걸립니다. 그러면 마법은 무엇일까요? 새로움을 짓는 숨결입니다. 마법은 누가 일으킬까요? 새로움을 짓고 싶은 사람이 일으킵니다.



.. 풍선이란 아주 사랑스럽고 / 세상에서 가장 예쁜 거지. / 첫째, 언제나 동그랗고. / 둘째, 대개는 알록달록해. // 셋째, 얼마나 멋지게 나는데! ..  (하늘을 나는 우르줄라)



  아이가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는 처음 태어날 적부터 노래를 알았을까요, 아니면 아이를 낳은 어버이가 노래를 물려주었을까요. 노래를 부르는 아이는 맑게 웃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아이는 밝게 뛰놉니다. 아마 어버이도, 아이한테 노래를 물려준 어버이도, 아이한테 찬찬히 노래를 물려주면서 맑게 웃었을 테고, 아이한테 노래를 물려주는 동안 이녁이 어릴 적에 뛰놀던 이야기를 그렸을 테지요.


  아이가 춤을 춥니다. 아이는 처음 태어날 무렵부터 춤을 알았을까요, 아니면 아이를 낳은 어버이가 춤을 물려주었을까요. 춤을 추는 아이는 곱게 웃습니다. 춤을 추는 아이는 기쁘게 뛰놉니다. 아마 어버이도, 아이한테 춤을 물려준 어버이도, 아이한테 신나게 춤을 물려주면서 곱게 웃었을 테고, 아이한테 춤을 물려주는 동안 이녁이 어릴 적에 동무들과 놀던 이야기를 그렸을 테지요.


  아이는 웃으면서 자라고, 어른은 웃으면서 큽니다. 아이는 노래하면서 자라고, 어른은 노래하면서 큽니다. 웃음과 노래는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이야기를 일으킵니다. 웃음과 노래를 함께 누리는 아이와 어른은 언제나 이야기꾼입니다.



.. 페터는 늘 그래. 가장 튼튼한 대들보도 / 구부릴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지. / 그런데 가장 나쁜 것은, / 자기가 한 거짓말을 믿는다는 거야 ..  (떡에 얽힌 사건)



  동시집이라 할 《마법에 걸린 전화기》는 부드럽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맑게 웃는 하루가 언제 태어나는가 하고 부드럽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곱게 노래하는 삶은 어디에서 태어나는가 하고 보드라이 이야기합니다.


  지구별 한쪽에서 나무가 자라 숲이 우거집니다. 숲이 우거진 곳에서 푸른 바람이 붑니다. 푸른 바람은 구름과 함께 지구별 다른 한쪽으로 갑니다.


  지구별 다른 한쪽에서 나무가 자라 숲이 짙푸릅니다. 숲이 짙푸른 곳에서 푸른 바람이 붑니다. 푸른 바람은 달이랑 별이랑 함께 지구별 또 다른 한쪽으로 갑니다.



.. 불쌍한 클라우스, 부모님이 / 네 귀를 보면 뭐라고 하시겠니? / 아, 그 귀 때문에 또 무슨 일이 생길지! / 겨울에는 귀가 동상에 걸릴 거야. // 이제 너한테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겠구나. / 뾰족한 돌을 던지면 안 된다고? / 아냐, 네가 마침내 깨달아야 할 것은 / 동물을 괴롭히는 건 절대로 권할 일이 아니라는 거지 ..  (못되게 굴면 좋을 게 없다)



  내 손에서 피어난 무지개는 네 손에서 새롭게 자랍니다. 네 손에서 자란 무지개는 내 손에서 다시금 자랍니다. 무지개 꼬리 한쪽은 내 손에 있고, 다른 한쪽은 네 손에 있습니다. 우리 손에 무지개가 있으니, 우리는 늘 어깨동무를 하면서 놉니다. 우리 손에서 자라는 무지개를 바라보면서, 우리 노래를 언제 어디에서나 마음껏 부르면서 달립니다.


  노래하는 아이들이 달리는 소리를 듣고 지구별이 웃습니다. 춤추는 아이들이 깔깔 웃는 소리를 듣고 지구별이 웃습니다. 지구별은 푸르게 웃습니다. 지구별은 하얗게 웃습니다. 지구별은 파랗게 웃습니다. 이 웃음은 다시 사람들을 살찌우는 숨결이 됩니다. 사람들을 살찌운 숨결은 새로운 웃음과 노래를 낳고, 새로운 웃음과 노래는 다시금 지구별을 사랑스레 어루만집니다. 4348.1.2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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