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734) 안의 1
“초밥은 초밥요리사에게 맡기라고? 우물 안의 개구리 주제에 어디서 큰소리야!”
《테라사와 다이수케/서현아 옮김-미스터 초밥왕 10》(학산문화사,2003) 212쪽
우물 안의 개구리 주제에
→ 우물에 갇힌 개구리 주제에
→ 우물에 빠진 개구리 주제에
→ 우물에서 노는 개구리 주제에
→ 우물 개구리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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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도 알 만한 옛말은 “우물 안 개구리”입니다. 우리는 예부터 “우물 안 개구리”를 말했지, 토씨 ‘-의’를 붙인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어이하여 토씨 ‘-의’를 이런 데에다가도 붙일까요. 이처럼 토씨를 잘못 붙이는 말투를 어이하여 자꾸 퍼질 뿐, 바로잡히지 못할까요. 잘 된 말보다 잘 안 된 말을 자꾸 듣다가 버릇이 될까요. 올바르게 쓰는 말보다 올바르지 않게 쓰는 말을 신문이나 책이나 방송에서 흔히 읽거나 듣다가 이렇게 굳어 버릴까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면, “동네 개구리”나 “웅덩이 개구리”처럼 말합니다. “동네 안 개구리”나 “웅덩이 안 개구리”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우물’을 떠올리면, 깊이 안쪽으로 파고든 곳이기에 “우물 안 개구리”처럼 쓸 수 있겠구나 싶은데, 다른 자리에서는 ‘안’을 따로 안 넣습니다. “동네 축구”나 “동네 야구”나 “동네 선생님”처럼 쓸 뿐, “동네 안 축구”나 “동네 안 야구”나 “동네 안 선생님”처럼 쓰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익숙하게 썼다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쓰기는 쓰되, 이 말투도 “우물 개구리”로 다듬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아니면 “우물에 갇힌 개구리”나 “우물에서 노는 개구리”처럼 뜻이나 느낌을 더욱 똑똑히 밝혀서 적어야지 싶습니다. 4339.9.13.물/4348.1.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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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밥은 초밥요리사한테 맡기라고? 우물 개구리 주제에 어디서 큰소리야
한국말사전을 보면, ‘-한테’는 입말로 쓰는 토씨요, ‘-에게’는 글말로 쓰는 토씨라고 밝힙니다. 이 보기글은 서로 입으로 주고받는 말입니다. 그러면, 입말일 테지요? 입말이라면, 토씨를 ‘-에게’가 아닌 ‘-한테’로 붙여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더 헤아리면, 우리 겨레가 예부터 쓰던 말은 모두 입말입니다. 글말이 아닙니다. 예부터 한국말은 모두 입말일 뿐, 글말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에게’라는 토씨를 붙일 일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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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818) 안의 2
아파트 안의 소란은 점점 커져만 갔다
《히로세 다카시/육후연 옮김-체르노빌의 아이들》(프로메테우스출판사,2006) 11쪽
아파트 안의 소란은 점점 커져만 갔다
→ 아파트는 더 시끄러워졌다
→ 아파트는 자꾸자꾸 시끄러워졌다
→ 아파트는 갈수록 어수선해졌다
→ 아파트는 더더욱 뒤죽박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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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서는 ‘소란’이 아닌 ‘어수선하다’나 ‘시끄럽다’를 넣었다면 토씨 ‘-의’가 끼어들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또 몰라요. “아파트 안의 시끄러움은 점점 커져만 갔다”처럼 쓸는지 모르니까요. 이처럼 써야 문학이 되는 줄 잘못 알 수 있으니까요.
시끄러워지거나 어수선해지는 곳은 아파트입니다. “아파트 안”이 시끄러워지지 않습니다. 다른 보기를 들자면, “숲이 시끄럽다”고 말할 뿐, “숲 안이 시끄럽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놀이터가 시끄럽다”고 말할 뿐, “놀이터 안이 시끄럽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교실이 시끄럽다”나 “객실이 시끄럽다”처럼 말할 뿐, “교실 안”이나 “객실 안”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4339.11.25.흙/4338.1.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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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는 갈수록 어수선해졌다
“시끄럽고 어수선함”을 뜻한다는 한자말 ‘소란(騷亂)’입니다. 한국말로 ‘시끄럽다’나 ‘어수선하다’라고만 쓰면 되는 셈입니다. ‘어지럽다’도 어울립니다. ‘점점(漸漸)’은 ‘차츰’이나 ‘조금씩’이나 ‘자꾸’로 고쳐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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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14) 안의 3
나는 엄마 품 안의 / 초승달이다 / 품 안에서 점점 / 보름달로 자란다
《최명란-수박씨》(창비,2008) 39쪽
엄마 품 안의 초승달이다
→ 어머니 품에 안긴 초승달이다
→ 어머니 품에 싸인 초승달이다
→ 어머니 품에서 자라는 초승달이다
→ 어머니 품에서 노는 초승달이다
→ 어머니 품에서 초승달이다
→ 어머니 품 초승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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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를 붙여서 얄궂은 말투이기도 하지만, ‘안’이라는 낱말을 얄궂게 쓴 말투이기도 합니다. 이 보기글은 아이한테 읽히는 동시입니다. 동시를 쓰면서 토씨 ‘-의’를 붙이는 일도 얄궂고, ‘안’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대목도 얄굽습니다.
잘 헤아려야 합니다. 태양계에 해와 달과 지구가 있습니다. “태양계 안”에 있지 않습니다. 물고기가 어항에서 헤엄칩니다. “어항 속”이나 “어항 안”에서 물고기가 헤엄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품에 안습니다. 아이는 어머니 품에 안깁니다. 아이를 안을 적에 “품 안”에 안지도 않고, 어머니한테 안길 적에 “품 안”에 안기지도 않습니다. 손오공은 “부처님 손바닥에서” 놀 뿐, “부처님 손바닥 안”이나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놀지 않습니다. 4348.1.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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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머니 품에 안긴 / 초승달이다 / 품에서 차츰 / 보름달로 자란다
“품에 안깁”니다. “품 안에 안기”지 않습니다. “손에 물건을 쥘” 뿐, “손 안에” 물건을 쥐지 않습니다. ‘안’은 아무 자리에나 쓰지 않습니다. ‘점점(漸漸)’은 ‘차츰’이나 ‘찬찬히’나 ‘천천히’로 다듬습니다. ‘엄마’는 아기한테 쓰는 낱말이니, ‘어머니’로 바로잡습니다.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