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대인시장과 작은 헌책방



  사람들은 밥을 먹으려고 저잣거리에 갑니다. 시골에서는 손수 일구는 논밭에서 밥을 얻지만, 도시에서는 저잣거리에 가서 먹을거리를 장만해야 집에서 밥을 지어 먹을 수 있습니다. 저잣거리는 어느 동네이든 무척 오래되기 마련이요, 수많은 사람이 얼크러져서 온갖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사람들은 마음을 가꾸려고 책방에 갑니다. 씨앗을 심거나 풀을 뜯거나 나무를 돌볼 적에도 마음을 가꾸지만, 도시에서는 씨앗을 심거나 풀을 뜯거나 나무를 돌볼 만한 너른 땅뙈기를 마련하기 어렵습니다. 몸뚱이 하나 느긋하게 누일 방 한 칸을 마련하는 데에도 모두 고단하거나 힘든 만큼, 따로 책을 쓰고 엮고 펴서 ‘마음을 가꾸는 이야기’를 빚습니다. 이러한 책 한 권을 만나면서 마음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으려 합니다.


  광주에 대인시장이 있고, 대인시장 옆에 작은 헌책방이 있습니다. 배가 고픈 이들은 저잣거리를 찾아 먹을거리를 장만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고픈 이들은 헌책방을 찾아갈까요. 아니면 알라딘 중고샵을 찾아갈까요, 아니면 큼지막한 새책방을 찾아갈까요, 아니면 인터넷을 켜서 집으로 책이 날아오도록 시킬까요, 아니면 도서관에 마실을 갈까요.


  새로 나오는 책은 새책방에 있습니다. 나온 지 제법 된 책은 도서관에 있을 법하지만, 도서관에서는 사람들이 덜 빌리거나 안 빌리거나 맞춤법이 지난 책은 내다 버립니다. 사람들이 많이 안 찾더라도 아름다운 책은 헌책방에 있고, 맞춤법이 지났어도 사랑스러운 책은 헌책방에 있습니다. 작은 헌책방은 작은 책벗이 작은 손길로 아끼거나 사랑하거나 보듬고 싶은 책을 조용히 건사합니다.


  가방을 메고 작은 헌책방으로 갑니다. 찬바람에 얼어붙는 손을 살살 비벼 녹이면서 책을 살핍니다. 즐겁게 고른 책은 값을 치른 뒤 가방에 넣습니다. 묵직한 가방을 기쁘게 멥니다. 언손을 웃옷 주머니에 넣고 녹이면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4348.1.1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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