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선물
내 어릴 적에 둘레 어른은 흔히 연필을 선물해 주었다. ‘공부 잘 하라는 뜻’일 텐데, 다른 고장에서 사는 분들이 다른 고장 문방구나 가게에 있는 ‘우리 동네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연필을 선물해 주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저녁에 신나게 깎아서 이튿날 학교에 가져가서 일부러 연필을 손에 쥐고 가만히 책상맡에 앉으면, 짝꿍이나 동무들이 “야! 그 연필 좀 보여줘!” 하곤 한다. 새 연필 한 자루로 하루가 새로우면서 빛난다.
아이들과 살면서 연필을 새롭게 쓴다. 아이들이 우리한테 아직 찾아오지 않던 때까지 퍽 오랫동안 연필을 잊고 살았다.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가니, 학교에서는 ‘연필 아닌 볼펜’만 써야 하는 듯이 말했다. 연필은 ‘아이들’이 쓰는 듯이 말했다. 이 물결에 어영부영 휩쓸리면서 서른 해 가까이 연필과 등을 진 채 지냈다.
큰아이가 요모조모 손을 놀리며 그림놀이를 즐기고 글놀이도 즐기니, 아이 손에 꼭 맞는 연필을 쓰도록 하고, 아이가 연필을 쓰도록 하니 나도 저절로 연필을 자주 쓴다. 바깥마실을 하다가 큰 문방구를 한 곳 보았기에, 냉큼 문방구에 들어갔다. 두 아이한테 선물을 하려고, 도라에몽 연필과 폴리 연필을 장만한다. 여기에 ‘내 연필’도 따로 한 통 장만한다. 나도 도라에몽 연필은 한 자루 갖고 싶으니, ‘내 몫으로 장만한 연필’이랑 ‘도라에몽 연필’ 한 자루를 바꾸자고 해 보아야지.
연필을 쓰면 볼펜보다 훨씬 가벼우면서, 슥슥 아주 잘 쓸 수 있다. 연필은 눕거나 엎드려서도 쓸 수 있다. 아무리 추운 날에도 연필은 얼지 않는다. 연필을 손에 쥐면 지구별 어느 숲에서 자란 나무가 나한테 왔을까 하고 꿈날개를 펼친다. 참말 그렇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연필 한 자루를 손에 쥐고 수업을 듣다가 으레 ‘이 연필이 자라던 깊은 숲’이 떠올라서 한참 꿈에 젖어 수업을 잊기 일쑤였다. 4348.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책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