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과 흙을 함께



  흙 한 줌이 있어도 아이들은 소꿉놀이를 한다. 풀 한 포기가 있어도 아이들은 가만히 들여다보거나 엉덩이를 깔고 앉는다. 아주 넓은 공원이 아니어도 된다. 언제 어디에서나 놀이를 짓는다. 먼 옛날을 돌이키면 이 땅은 어디에나 시골이었고, 모든 곳에 흙과 풀이 싱그러웠으며, 어디를 가든 숲과 들이 아름다웠다. 지난날에는 어른들 누구나 들일과 숲일을 했으니, 아이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놀든 근심하거나 걱정할 일이 없다. 더군다나, 어른들은 들과 숲에서 삶을 짓고 아이들은 들과 숲에서 놀이를 지으니, 학교나 학원이라는 데가 있을 까닭이 없다. 모든 것을 스스로 짓고 누리니까.


  오늘날에는 학교와 학원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어른도 아이도 삶을 안 짓고 삶을 안 누리며 삶을 안 즐기기 때문이다.


  들사람이나 숲사람한테는 텔레비전이 재미없을 뿐 아니라 쓸모가 없다. 들사람이나 숲사람한테는 신문이나 잡지가 덧없을 뿐 아니라 쓸데가 없다. 들사람이나 숲사람한테는 영화도 문학도 사진도 그림도 딱히 없어도 된다. 들사람이나 숲사람은 굳이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든 다음 책을 엮을 일이 없다. 왜 그러하겠는가? 모든 슬기를 몸과 마음에 아로새기기 때문이다. 모든 삶을 스스로 짓고 모든 사랑을 스스로 자아내며 모든 꿈을 스스로 이루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삶이나 사랑이나 꿈이 있는 사람이 없다. 오늘날에는 삶이나 사랑이나 꿈을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졸업장을 따지고, 그러니 연봉을 살피며, ‘안정된 고정수입이 있는 공무원 일자리’를 바란다. 이러니, 아이들한테 직업훈련과 직업교육만 시키는데다가,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이런 직업이나 저런 직업에 익숙하도록 교재를 보여주거나 책이나 영화를 자꾸 보도록 시킨다. 삶이 없기 때문에 돈만 버는 일자리만 말하고, 사랑이 없기 때문에 ‘살곶이(섹스)’만 부추기는 영화와 문학이 넘치며, 꿈이 없기 때문에 여가와 여행과 문화와 예술을 따질밖에 없다.


  생각해 볼 노릇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여가 생활’을 어떻게 하는가? 오늘날 사람들이 ‘여행’을 어디로 가는가? 오늘날 사람들이 ‘문화’를 어디에서 어떻게 빚는가? 오늘날 사람들이 ‘예술’을 무엇을 보면서 꾸미는가?


  들사람이나 숲사람은 일하면서 늘 노래하고 춤추며 웃고 노래했다. 들사람이나 숲사람한테서 태어난 아이는 놀면서 스스로 노래하고 춤추며 웃고 노래했다.


  집마다 풀밭이 있어야 하고 흙이 있어야 한다. 골목이나 고샅마다 흙길이 있어야 하고 풀밭이 있어야 한다. 마을이나 동네마다 숲이 있어야 하고, 숲정이가 그윽하면서 짙푸러야 한다. 아이들은 흙을 만지며 놀아야 하고, 어른들은 흙을 만지며 밥을 얻어야 한다. 참말 그뿐이다. 책을 읽거나 학교를 다녀서 무엇을 하겠는가. 4348.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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