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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젤 알랭 3
카사이 스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43
함께 마음을 나누려면
― 지젤 알랭 3
카사이 수이 글·그림
우혜연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2.11.15.
이틀 동안 꼼짝없이 앓느라 집일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날마다 바지런히 찍던 아이들 사진을 거의 못 찍습니다. 그렇지만, 자리에 드러누워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두 아이가 마당을 가로지르고 뒤꼍을 오르내리면서 온몸에 땀이 나도록 뛰노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자리에 드러누워서 가만히 그림을 그립니다. 두 아이가 어떤 얼굴로 어떤 노래를 부르면서 어떤 놀이를 할는지 그림을 그립니다. 여느 때와 달리 드러누워 끙끙 앓는 어버이가 있어도, 두 아이가 서로 아끼고 돌보면서 노는 하루는 참으로 예쁘면서 사랑스럽습니다.
두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기도 하지만, 시골자락에 자리를 잡은 우리 집도 차근차근 터를 닦습니다. 처음에는 온갖 풀이 우거진 뒤꼍이었지만, 이제 차근차근 우리 식구 발길이 닿으면서 우리 땅으로 거듭납니다. 우리가 심은 나무가 제법 자라고, 우리 식구와 함께 크는 여러 나무도 해마다 그늘이 우거집니다.
- “그렇게 바로 늘어날 리 없잖아요! 성격이 왜 그렇게 급해요?” “윽.” “미안하구나, 지젤. 몸이 무거워지는 바람에 저런 무서운 사람이랑 일을 하게 해서.” (11쪽)
- ‘이렇게 다양한 재료가 있는데, 크레이프에 쓸 수 있는 건 정말 조금밖에 없구나.’ (14쪽)
아침저녁으로 나무를 돌아보면서 말을 겁니다. 낮에는 해와 인사를 하고 밤에는 별과 인사를 나눕니다. 나무는 우리한테 푸른 바람을 나누어 줄 뿐 아니라, 바람이 부는 날마다 촤르르촤르르 일렁이는 노래를 베풉니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노래요, 시골에서는 언제나 기쁘게 마주하는 춤사위입니다.
나무는 우리 손길을 얼마나 반길까요? 나무는 우리 손길을 얼마나 기다릴까요? 나뭇줄기에 볼을 가만히 대고 부비면 무척 부드럽습니다. 나뭇잎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면 무척 향긋합니다. 꽃망울을 살살 어루만지면 아기 살갗처럼 매끈하면서 보들보들합니다. 이 나무가 있으니 삶터가 푸릅니다. 나무 곁에서 사람이 사랑을 나누기에 삶자리가 아름답습니다. 서로 마음으로 함께 살고,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바람과 햇볕을 함께 맞아들입니다.
- “여보. 겨우 찾아온 손님이에요. 크레이프도 둘이서 열심히 생각한 메뉴잖아요.” (31쪽)
- “소, 소중히 다뤄 주세요!” “응? 소중한 책이야?” “매우.” “알았어.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할게.” (47쪽)
- “그렇다면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소중히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언젠가 전부 잃어버리게 돼!” (49쪽)
카사이 수이 님이 그린 만화책 《지젤 알랭》(대원씨아이,2012) 셋째 권을 읽습니다. 《지젤 알랭》 셋째 권에서 ‘에릭’은 지젤 알랭이 돌보는 집에서 나와 대필작가 노릇을 합니다. 지젤 알랭은 언제나처럼 씩씩하게 ‘만능해결사’ 일을 합니다. 지젤 알랭이 모든 일을 술술 풀 수 있기에 하는 ‘만능해결사’라기보다는, 지젤 알랭 스스로 온갖 일을 찬찬히 겪거나 부딪히면서 삶을 사랑하고 싶어서 하는 ‘만능해결사’입니다.
새로운 크레이프를 빚도록 이끈다든지,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꿈꾸게 한다든지, 살가운 동무한테 기운을 불어넣는다든지, 지젤 알랭은 이웃과 동무 곁에서 따순 눈길로 바라보고 고운 손길을 내밉니다.
- “나도 에릭을 좋아해. 에릭은 나의 첫 친구니까. 떨어져 있어도 절대 잊지 않을 거야.” (73쪽)
- “사람 얘기를 들어요! 어째서 자기 일을 하지 않으려는 거죠? 사람들이 당신을 필요로 하는데!” “너랑 무슨 상관인데? 뱃사람이냐?” “전 만능해결사예요. 만능해결사인 지젤 알랭.” (171쪽)
함께 마음을 나누려면 함께 살아야 합니다. 같은 집에 깃들 때에 함께 산다고 할 수도 있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내더라도 늘 그리고 생각할 때에 함께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얼굴을 보면서 함께 살 수 있으며, 마음으로 떠올리고 그리면서 사랑하면서 함께 살 수 있습니다.
늘 얼굴을 마주하지만 서로 아끼는 마음이 없다면, 함께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주 얼굴을 마주할 뿐 아니라 말도 오래 섞는다지만 서로 따사로운 마음이 흐르지 않는다면, 함께 산다고 할 수 없어요.
- “그러고 보니 주인 아가씨의 용건은?” “도서관이었지만, 뭐, 다음에 가면 돼요!” (207쪽)
재미난 책을 읽거나 신나는 영화를 보아야 함께 웃지 않습니다. 대단한 노래를 듣거나 놀라운 노래잔치를 보아야 함께 춤추지 않습니다. 작고 수수한 놀이 한 가지로도 웃습니다. 투박하고 조그마한 들꽃 한 송이로도 노래하고 춤춥니다.
삶은 사랑을 바탕으로 삼아서 흐릅니다. 하루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엮으면서 새로 찾아옵니다. 삶은 사랑을 가꾸려는 뜻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루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면서 환하게 피어납니다.
내가 너한테 사랑을 주기에 네가 나한테 사랑을 주지 않습니다. 내가 너한테 믿음을 베풀기에 네가 나한테 믿음을 베풀지 않습니다. 나무를 함께 바라보아요. 하늘을 함께 올려다보고, 숲길을 함께 걸어요. 이 땅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고, 이 보금자리를 씩씩하게 차근차근 함께 일구어요. 4347.12.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