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32. 너와 내가 나란히
두 사람이 나란히 걷습니다. 한 사람은 오른쪽에 서고 다른 한 사람은 왼쪽에 섭니다. 앞에서 보면 왼쪽과 오른쪽이 되고, 뒤에서 보면 오른쪽과 왼쪽이 됩니다. 두 사람은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왼쪽과 오른쪽으로 달라집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이쪽에 있다고 하든 저쪽에 있다고 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나란히 걷기에 즐겁습니다. 나란히 걸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아이는 어버이와 함께 나들이를 하면서 즐겁습니다. 어버이가 자가용을 몰아야 신나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자전거에 태워야 재미있지 않습니다. 어버이와 손을 맞잡고 걸어도 신이 나고, 어버이와 달리기를 하면서 땀을 흘려도 재미가 있습니다.함께 있는 자리가 즐겁고, 서로 웃으며 마주볼 수 있으니 기쁩니다.
사진을 찍습니다. 손에 사진기를 쥔 사람이 사진을 찍습니다. 손에 사진기를 안 쥔 사람은 사진기를 바라봅니다. 사진기를 쥔 사람은 이녁 눈길로 동무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하나 남깁니다. 사진에 찍힌 사람은 앞에 마주하던 사람이 찍은 모습에 따라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내가 손에 사진기를 쥐면 내가 이야기를 갈무리하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요모조모 이야기를 그립니다. 네가 손에 사진기를 쥐면 네가 이야기를 담고, 네 앞에 있던 내가 이모저모 이야기를 헤아립니다. 사진을 찍은 사람한테는 이 느낌과 생각이 있을 테지만, 사진에 찍힌 사람한테는 다른 느낌과 생각이 있습니다. 둘은 틀림없이 한 자리에 있었으나, 둘이 느끼거나 보거나 생각한 이야기는 살짝 다르거나 사뭇 다릅니다. 그리운 한때를 사진으로 남겼다고 여길 수 있고, 잊고 싶은 지난날을 되새긴다고 여길 수 있으며, 가슴속에 꿈을 품은 젊은 날을 사진으로 아로새겼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사진 한 장에서 길어올리는 이야기는 다르지만, 사진 한 장으로 새롭게 만납니다. 너와 나는 여태 다른 곳에서 나고 자라 만났지만, 마음이나 뜻이 만나서 함께 사귀거나 어울립니다. 사진 한 장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이 한마음이 되어 만나도록 잇는 징검다리’가 됩니다. 너와 내가 나란히 서서 어깨동무를 하도록 이끄는 징검돌이 됩니다.
나는 너한테 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너는 나한테 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똑같은 일을 놓고 두 사람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다른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사랑이 피어오르고 믿음이 자라며 꿈이 몽실몽실 부풉니다. 사진 한 장을 다르게 바라보는 두 눈길은 어깨동무하는 손이 되고,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는 눈빛이 됩니다. 4347.12.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