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시간 2
세이케 유키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37



오붓하게 누리는 하루

― 성실한 시간 2

 세이케 유키코 글·그림

 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4.9.30.



  내 땅이 있을 적에는 삶이 참으로 다릅니다. 재산이라든지 땅문서로 가지는 땅이 아니라, 내 손으로 돌보고 내 발로 디딜 수 있는 땅이 있을 적에는 하루가 참으로 다릅니다. 풀이 자라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 있고, 풀꽃이 피는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는 모습을 꾸준히 바라볼 수 있고, 마음에 드는 나무를 골라서 심을 수 있습니다.


  내 땅에서 자라는 나무가 있으면, 이 나무로 찾아오는 새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온갖 멧새가 날마다 사뿐히 내려앉아서 놀다가 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으며, 나무열매를 따먹는 모습이나 풀벌레를 잡아서 먹는 모습까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예부터 사람들은 누구나 ‘내 땅’을 누렸고, 누구나 내 땅을 누렸기에 내 땅에서 아이를 낳고 돌볼 적에 으레 모든 이야기를 내 땅에서 길어올렸겠다고 느낍니다. 개미 한 마리부터 나무 한 그루까지, 바람 한 점부터 구름 한 점까지, 햇살 한 조각부터 별빛 한 조각까지, 골고루 살피고 맞아들이면서 하루를 누렸으리라 느낍니다.





-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니까요! 카즈사! 살아 있는 사람에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만 한다고.” (19쪽)

- “진짜로 더 이상 아무것도 못하게 되면 어쩔 건데요?”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지켜보는 수밖에 없어!” (30쪽)



  오늘날에는 ‘내 땅’을 누리는 사람이 매우 적습니다. 도시에는 아파트나 건물을 손에 쥔 사람이 꽤 많지만, 이들은 아파트나 건물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가졌을 뿐입니다. 나무를 심는다든지 새와 노닌다고 하는 땅을 가지지 않습니다. 몇 억이나 몇 조에 이르는 땅을 가졌어도, 이 땅을 홀가분하게 누리지 못하는 도시 얼거리입니다. 삶터로 누리는 땅이 아닌 재산으로 거머쥔 땅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많이 가지면 즐거울까요? 아니에요. 돈을 많이 가진대서 즐겁지 않습니다. 삶을 가꾸거나 일굴 수 있는 돈을 가져야 즐겁습니다. 잔뜩 거머쥐기에 즐겁지 않아요. 기쁘게 쓰면서 나눌 수 있을 때에 즐겁습니다. 이야기를 짓고, 사랑을 지으며, 꿈을 지을 수 있는 삶과 살림일 때에 즐겁습니다.





- “난 유령 같은 것들이 보이는 게 너무 싫어 미칠 것만 같았어. 정신병인가 싶어서 부모님한테 말도 못하고. 그런데 네가 날 의지해 주고 네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난생 처음으로 귀신이 보여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 (49쪽)

- “생판 모르는 타인을 의지해서라도 어머니께 기운 내시라고 전달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그래! 카즈사가 지금의 널 보면 정신 차려, 그러면서 화낼걸? 틀림없이.” (100쪽)



  세이케 유키코 님이 그린 만화책 《성실한 시간》(대원씨아이,2014) 둘째 권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살아서 이 땅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하루를 누릴 때에 웃거나 노래하거나 즐거울까요. 죽어서 이 땅에 묻힌 사람은 어떻게 삶을 마감하거나 앞으로 새로운 삶을 맞이하려고 할 적에 즐거울까요.


  우리는 언제 웃을까요. 우리는 어느 곳에서 노래할까요. 우리는 누구와 사랑을 나눌까요. 우리는 왜 밥을 먹고 왜 일을 하거나 놀이를 할까요.



-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 아직은 극복할 엄두가 나지 않아. 아마도 평생 무리겠지. 그래도, 어떻게든 잘 살아 볼게.” (129∼130쪽)





  설거지를 하다가 수세미에서 수세미 씨앗이 한 톨 뿅 나옵니다. 잘 마른 수세미 열매는 설거지를 하기에 좋은데, 수세미 씨앗 한 톨을 보고 나서 속을 들여다보니, 참말 수세미 씨앗이 여럿 더 있습니다. 수세미란 수세미풀에서 피어난 꽃이 시들고 나서 맺은 열매입니다. 이 열매를 말려서 설거지를 할 적에 씁니다. 잘 마른 수세미 사이에는 씨앗이 깃듭니다. 이 씨앗을 흙한테 돌려주면 수세미풀은 새롭게 자랄 수 있습니다.


  무엇이 되고 싶은 삶인지 돌아봅니다. 무엇을 하면서 하루를 맞이하고 싶은지 생각합니다. 내가 내 삶을 돌아보아야 내 삶을 읽습니다. 내가 내 하루를 생각해야 동이 트는 아침에 아이들과 웃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만화책 《성실한 시간》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저마다 즐거우면서 아름답게 삶을 빚을 때에 곱게 빛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들려줍니다. ‘죽음 뒤’를 조금 건드리기는 하지만, ‘죽음 뒤’를 슬기롭거나 또렷하게 밝히지는 못하는데, ‘사는 동안’을 찬찬히 짚으니, ‘사는 동안’ 어떻게 살면서 웃고 노래할까 하고 생각하면서 조용히 책을 덮습니다. 4347.12.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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