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08. 늦가을 숨결



  따스한 볕을 받고 돋는 풀이 있고, 차가운 바람을 받고 시드는 풀이 있습니다. 한 해에 여러 차례 다시 돋고 새로 돋는 풀이 있으나, 한 해에 한 차례 돋고 나면 시들어 이듬해가 되어야 비로소 만나는 풀이 있습니다. 들을 보면 철마다 여러 풀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붉게 시들면서 흙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풀이 있고, 짙푸른 잎사귀를 내밀면서 흙에 뿌리를 내리려는 풀이 있습니다. 씨앗을 퍼뜨리고 나서 쓸쓸하게 선 꽃대가 있고, 늦가을에도 씨앗을 맺으려고 애쓰는 꽃대가 있습니다.


  활짝 웃는 아이가 있고, 고단해서 곯아떨어진 아이가 있습니다. 빙그레 웃는 이웃이 있고, 아파서 이맛살을 찡그리는 이웃이 있습니다. 모두 다른 삶이고 저마다 다른 이야기입니다.


  누군가는 활짝 웃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볼 테고, 누군가는 아파서 눈물을 짓는 아이를 찬찬히 어루만질 테지요. 사진에는 우리 이야기를 담습니다. 사진에는 우리 숨결을 담습니다. 늦가을에 시드는 풀줄기와 늦가을에 새로 돋는 풀줄기가 어우러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오직 아스팔트만 있는 도시에서 자동차 바퀴를 쳐다보며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늦가을 숨결을 찍은 사진을 보면, 늦가을을 느낍니다. 철을 헤아릴 길이 없는 도시 한복판 아스팔트를 찍은 사진을 보면, 철이 사라지거나 잊혀진 도시 얼거리를 느낍니다.


  하늘을 올려다보기에 하늘빛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별잔치를 바라보기에 별잔치 빛살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나 이웃이나 동무를 마주하기에 사랑빛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아프거나 괴롭거나 힘겨운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기에 눈물빛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새로운 숨결로 사진이 한 장 태어납니다. 4347.12.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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