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647) 시작 64
여행 가방에 이런저런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 꼬마 페그는 다시 전속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고 … 꼬마 페그의 주먹질은 점점 더 세지기 시작했다 … 그럼 이제 시작해도 되겠군요
《알레산드로 가티/김현주 옮김-나쁜 회사에는 우리 우유를 팔지 않겠습니다》(책속물고기,2014) 34, 38, 108, 149쪽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 짐을 챙긴다
→ 짐을 챙겼다
질주하기 시작했고
→ 내달렸고
→ 내달리려고 했고
더 세지기 시작했다
→ 더 세진다
→ 더 세졌다
이제 시작해도 되겠군요
→ 이제 해도 되겠군요
…
어느 말이든 쓰면 쓸수록 입에 붙습니다. 안 쓰면서 입에 붙는 말은 없습니다. 한자말 ‘시작’은 한 번 쓰고 나면 어느 자리이든 마냥 달라붙습니다. 짐을 챙기면 ‘챙긴다’고 하면 되고, 달리면 ‘달린다’고 하면 되는데, 자꾸 “챙기기 시작한다”나 “달리기 시작한다”처럼 쓰고 맙니다.
이 보기글을 보면 “주먹질은 차츰 더 세지기 시작했다” 꼴로도 나오는데, 주먹질은 어떻게 더 세지기 ‘시작’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세진다면 ‘세지다’라 할 노릇이고, 여려지면 ‘여려지다’라 할 노릇입니다. 빨라지면 ‘빨라지다’라 해야지 ‘빨라지기 시작하다’처럼 적을 까닭이 없습니다.
어떤 일을 할 적에는 “이제 한다”고 말합니다. “이제 시작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4347.12.1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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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방에 이런저런 짐을 챙긴다 … 꼬마 페그는 다시 온힘을 다해 내달렸고 … 꼬마 페그는 차츰 더 세게 주먹으로 두들겼다 … 그럼 이제 해도 되겠군요
“전속력(全速力)으로 질주(疾走)하기”는 “온힘을 다해 내달리기”나 “달릴 수 있을 만큼 빠르게 달리기”로 손질하고, “꼬마 페그의 주먹질은 점점(漸漸) 더 세지기”는 “꼬마 페그 주먹질은 더욱더 세지기”나 “꼬마 페그는 차츰 더 세게 주먹으로 두들기기”로 손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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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1647) 시작 65
농사를 시작한 지 35년입니다. 농민운동을 해온 지도 35년입니다
《김덕종·손석춘-식량 주권 빼앗겨도 좋은가?》(철수와영희,2014) 6쪽
농사를 시작한 지
→ 농사를 한 지
→ 농사를 지은 지
→ 농사꾼이 된 지
→ 시골지기가 된 지
→ 시골일을 한 지
…
보기글을 보면 앞쪽은 “시작한 지”로 적고, 뒤쪽은 “해온 지도”로 적습니다. 앞과 뒤에 다르게 적어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농사는 ‘시작’해야 하고 농민운동을 ‘해’야 하지 않아요. 둘 모두 ‘하다’로 나타내면 됩니다. 앞쪽은 조금 다르게 적고 싶다면 “농사를 지은 지”로 적으면 됩니다. 4347.12.1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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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일을 한 지 서른다섯 해입니다. 농민운동을 해 온 지도 서른다섯 해입니다
‘35년(三十五年)’은 ‘서른다섯 해’로 손봅니다. ‘농사(農事)’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시골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