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고등학교 도서관 만화책 ㄱ



  시골 고등학교 도서관에 찾아간다. 이곳 아이들과 이곳에서 도란도란 이야기잔치를 누린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 마음속에는 어떤 씨앗이 있을까.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동무를 사귄 아이들 가슴속에는 어떤 노래가 있을까. 시골에서 나고 자라 학교를 다니지만 모두 도시로 가고 싶다는 뜻을 키우는 아이들 머릿속에는 어떤 사랑이 있을까.


  시골 고등학교 도서관은 그리 크지 않다. 시골 고등학교 도서관이 갖춘 책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만 이 작은 책터는 누구한테나 열렸고, 햇볕이 잘 들며, 아기자기하게 예쁜 책들이 쏠쏠히 있다. 도시에 있는 자그마한 책방보다 작으며, 시골 읍내에 있는 더 작은 책방보다 작은 시골 고등학교 도서관이지만, 이곳에는 ‘읽을 책’과 ‘읽힐 책’이 있다.


  그렇다. 도서관은 커야 하지 않다. 도서관에는 책이 가득 쌓여야 하지 않다. 도서관에는 ‘책을 둘러싼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도서관에는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책으로 짓는 꿈을 키우려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도서관에는 ‘내 삶에서 몸으로 미처 겪지 못한 이야기를 배우도록 돕는 길동무’가 있어야 한다.


  만화책 《닥터 노구찌》가 아주 너덜너덜하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이 만화책을 읽었을까. 이 만화책을 읽은 시골 고등학교 아이들은 어떤 생각과 마음과 뜻을 가슴에 씨앗으로 심을 수 있었을까.


  내 어릴 적을 돌아본다. 내가 처음 만난 ‘학교 도서관’을 떠올린다. 고등학교를 두 해째 다니던 때에 비로소 ‘학교 도서관’을 만났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와 중학교에는 ‘학교 도서관’이 없었고, 중학교에는 ‘학급문고’조차 없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도 ‘학교 문을 연 지 다섯 해’가 되어서야 ‘빈 교실’ 한 칸을 고쳐서 겨우 ‘도서관 시늉’을 낼 뿐이었다.


  예전에, 그러니까 나로서는 스무 해 남짓 앞선 지난날에, 낡거나 닳은 책이 있으면 겉종이를 새로 대고, 하얀 실로 꿰매었다. 책손질을 마친 뒤에는 무거운 돌로 며칠쯤 눌렀다. 겉종이를 새로 댈 적에는 붓으로 책이름을 정갈하게 새로 적었다. 그림까지 그려 넣지는 못했지만, 하얀 빛깔로 새 겉종이를 대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두고두고 여러 사람 손길을 기쁘게 탈 수 있기를 바랐다.


  책 한 권을 새로 사자면 돈이 그닥 많이 안 든다. 만화책 한 권 새로 장만하자면 오천 원이면 넉넉하다. 낡고 닳은 만화책 《닥터 노구찌》를 손질하자면 며칠쯤 걸릴까. 두꺼운 종이를 대고 나무풀을 바르고 실로 꿰매고 하얀 종이를 덧대어 이름을 새로 적고 무거운 돌로 눌러서 책꼴을 새로 내도록 할 수 있는 책아이를 기다린다. 4347.1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