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만지는 마음



  모과나무 겨울눈과 복숭아나무 겨울눈과 매화나무 겨울눈은 모두 다릅니다. 눈으로 보아도 다르고, 손으로 만져도 다르며, 코를 갖다 대며 냄새를 맡아도 다릅니다. 동백꽃과 장미꽃은 서로 다릅니다. 눈으로 보아도 다르고, 손으로 만져도 다르며, 코를 갖다 대며 냄새를 맡아도 다릅니다. 농약과 비료를 뿌린 밭자락 흙이랑, 풀이 스스로 돋아 우거진 밭자락 흙이랑, 사람들 발길에 꾹꾹 눌린 밭자락 흙이랑, 모두 다릅니다. 눈으로 보아도 다르고, 손으로 만져도 다르며, 쪼그려앉아 냄새를 맡아도 다릅니다.


  내 옷과 곁님 옷과 아이들 옷은 서로 다릅니다. 눈으로 보아도 다르고, 손으로 만져도 다릅니다. 복복 비벼서 빨 적에도 다르고, 물기를 짤 적에도 다르며, 빨랫줄에 널 적에도 다릅니다. 잘 말라서 걷을 적에도 다르고, 찬찬히 갤 적에도 다르며, 옷장에 놓을 적에도 다릅니다.


  꼭 눈으로 보아야 다 다른 줄 알아채지 않습니다. 꼭 손으로 만져야 다 다른 줄 느끼지 않습니다. 꼭 냄새를 맡아야 다 다른 줄 깨닫지 않습니다. 이 지구별에는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요.


  능금나무에서 능금알을 따든, 유자나무에서 유자알을 따든, 똑같은 알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무가 제 결을 고이 살려서 산다면, 나무꽃이나 나무열매는 모두 다릅니다. 그러나, 도시에 내다 팔려고 틀에 맞추려고 하면, 꽃이며 열매는 모두 똑같아야 합니다. 달걀도 모두 똑같아야 하고, 고기 살점도 모두 똑같아야 합니다. 울퉁불퉁하거나 크게가 다 다르면, 도시 사회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다 똑같아야 한다는 도시 사회에서는 사람들도 거의 엇비슷합니다. 차림새가 엇비슷하고, 학교나 회사는 아예 똑같은 옷만 맞춰 입히며, 머리카락 모양도 똑같이 맞추도록 윽박지릅니다. 나중에는 얼굴과 몸매를 뜯어고쳐서 생김새까지 엇비슷합니다. 이러다 보니, 도시 사회에서는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책을 즐겁게 읽기보다는, 다 같은 책을 모두 똑같이 읽으며 베스트셀러 키우기로 휩쓸리고, 다 똑같은 책을 다 똑같은 눈길과 느낌으로 읽도록 부추기니, 다 다른 생각이나 마음이나 꿈이 자라지 못합니다.


  눈으로 보아도 다르지만, 이제 눈으로 보면서 다른 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손으로 만져도 다르지만, 이제 손으로 만지면서 다른 느낌을 입으로 말하거나 글로 쓸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마음을 열어 생각을 기울이면 다 다른 줄 알아챌 테지만, 마음을 열거나 생각을 기울여도 오늘날에는 사람들 마음과 생각이 거의 같거나 아예 똑같은 틀에 갇혀서 벗어날 줄 모르지 싶습니다. 4347.11.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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