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마시며 글쓰기
글을 쓰는 어떤 사람은 담배를 태우거나 술을 마십니다. 담배를 태우거나 술을 마셔야 글이 나온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담배를 태울 줄 모르기에, ‘술을 마시면서 글을 쓰자’고 하면서 쓴 적이 예전에 있습니다. 어떤 느낌이고 어떤 글이 나올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술을 마시면서 쓴 글’은 나중에 모두 버렸습니다. 술을 마시면서 쓴 글 가운데 나중에 나 스스로 흐뭇하다고 느낀 글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글을 쓰면서 물을 마십니다. 커다란 유리병에 물을 가득 담아서 마십니다. 글을 쓰다가 팔힘이 달리거나 졸음이 오면 물을 들이켭니다. 두어 모금 벌컥벌컥 들이켠 뒤, 한 모금을 입에 머금습니다. 이렇게 물을 마시면 힘이 새로 솟고 눈을 번쩍 뜰 수 있습니다. 마치 자동차에 기름을 넣듯이, 내 몸은 맑은 물과 바람을 맞아들이면서 ‘글을 쓸 새 기운’을 끌어냅니다.
아마 ‘어떤 글을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리라 느끼는데, 내가 가장 자주 쓰고 가장 많이 쓰는 글은 ‘한국말사전에 들어갈 글’입니다. 낱말을 다루고 말투를 여미는 글이니, 아무래도 ‘술을 마시면서 쓰는 글’이 될 수 없을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나는 책이야기를 쓰든 아이들을 돌보는 이야기를 쓰든 책방마실 이야기를 쓰든 동시를 쓰든 무엇을 쓰든, 물을 마셔야 글힘이 살아납니다. 4347.11.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