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96. 밥 한 그릇과



  밥 한 그릇을 기쁘게 받습니다. 내가 손수 지은 밥을 손수 밥상에 올려 기쁘게 수저를 듭니다. 한집에 사는 곁님이 손수 지은 밥을 기쁘게 받기도 하고, 내 어머니나 곁님 어머니가 손수 지은 밥을 기쁘게 받기도 하며, 바깥에서 밥 한 그릇 사다 먹을 적에 다른 사람이 지은 밥을 기쁘게 받기도 합니다. 어느 때이든 기쁘게 받는 밥 한 그릇입니다.


  아이들은 둘레에서 차린 밥을 받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손수 밥을 짓지 않습니다. 아이더러 밥을 손수 지어서 먹으라고 이르는 어른은 없습니다. 더욱이, 아이더러 빈 그릇을 치우거나 설거지를 하라고 시키는 어른은 없으며, 아이더러 벼를 베거나 볏섬을 나르라고 시키는 어른도 없습니다.


  아이가 걸음을 떼고 제법 높은 데까지 손을 뻗을 수 있으면, 들딸기는 손수 조금 훑을 수 있습니다. 낮은 가지에 달린 열매를 손수 따거나, 밭자락 오이쯤 손수 딸 수 있어요. 이무렵에도 아이들은 어른이 딴 열매를 받아서 먹습니다.


  아이들은 칼질을 거들거나 마늘빻기를 거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저를 들며 방긋 웃고 노래하는 목소리로도 밥짓기를 함께 하는구나 싶습니다. 밥을 짓는 어버이 곁에서 콩콩 뛰면서 노는 몸짓과 목소리로도 얼마든지 밥짓기를 거드는구나 싶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 베푸는 기운을 받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 넌지시 나누는 숨결을 얻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함께 짓는 밥 한 그릇입니다. 함께 찍는 사진 한 장입니다. 함께 이루는 삶입니다. 함께 나누는 사랑입니다. 4347.11.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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