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93. 왜 너를 찍는가



  씨앗 한 톨이 바람에 날려 퍼집니다. 마을 할매가 이녁 밭자락에 상추를 심으니, 상추가 무럭무럭 자란 뒤 씨앗을 맺습니다. 마을 할매는 이듬해에 다시 심을 상추씨를 건사하는데, 이 사이에 상추씨 몇 톨이 바람을 타고 곳곳으로 퍼집니다. 마을논 도랑 귀퉁이에 늦가을 상추풀이 한 포기 돋습니다. 아무도 이곳에 상추를 안 심었으나, 바람이 상추씨를 심어 주었습니다.


  씨앗 한 톨이 새똥과 섞여 떨어집니다. 새들은 먹이를 찾아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 다닙니다. 애벌레를 찾고 나무열매를 찾습니다. 애벌레는 새한테 고마운 먹이가 되고, 나무열매는 새한테 반가운 밥이 됩니다. 나무열매를 냠냠 먹은 새는 이리저리 즐겁게 날다가 똥을 뽀직 눕니다. 똥에 섞인 씨앗은 하늘을 가르며 떨어집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된 길바닥에 떨어지면 다시 태어나지 못하지만,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된 길바닥에 떨어지더라도 때마침 비가 내려 씨앗을 흙땅으로 옮겨 주면, 씨앗 한 톨은 기쁘게 땅에 깃들어 뿌리를 내립니다. 새로운 나무가 자랄 수 있습니다.


  조그마한 생각 하나를 키웁니다. 아직 조그맣고 조그마한 생각 하나를 돌봅니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길을 생각 하나로 키웁니다. 이제부터 이루려는 꿈을 생각 하나로 키웁니다.


  생각은 무럭무럭 자랍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씨앗과 같은 생각이 씩씩하게 자랍니다. 자꾸자꾸 자라는 생각은 떡잎을 내놓고 줄기를 올리듯이 차츰차츰 아름다운 모양새가 됩니다. 꾸준히 자라는 생각은 뿌리를 튼튼히 내리듯이 알차고 올찹니다. 어느덧 생각은 커다란 무지개처럼 되고, 이러한 생각은 내 삶자락을 곱게 보듬습니다.


  사랑스러운 이웃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습니다. 어여쁜 아이들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습니다. 살가운 동무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습니다. 작은 들꽃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습니다. 푸르게 우거진 숲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습니다. 자동차물결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골목집 꽃그릇을 쓰다듬으며 사진을 찍습니다. 아픈 이웃과 웃는 이웃하고 어깨를 겯으며 사진을 찍습니다. 어디에서나 생각을 키우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는 생각이란, 내가 오늘 이곳에서 찍는 사진 한 장이 씨앗처럼 씩씩하게 드리워 아름드리 나무로 자랄 수 있기를 바라는 생각입니다. 이 사진 한 장을 바탕으로 내 삶과 네 삶을 모두 즐겁게 어루만지고 싶은 꿈을 키우려는 생각입니다.


  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일까요. 나는 내 넋이고, 너는 네 넋입니다. 나는 내 숨결이고, 너는 네 숨결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이웃이요, 사람과 나무와 풀 사이도 이웃입니다. 어른과 아이 사이도 동무요, 사람과 새와 풀벌레 사이도 동무입니다. 이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목숨은 서로 너와 나라는 금이 따로 없이 너나들이입니다. 내가 왜 너를 찍을까요. 너는 내 다른 모습이요, 너는 내 다른 숨결이며, 너는 내 다른 넋이고, 너는 내 다른 사랑이기 때문에 사진으로 찍습니다. 4347.11.2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