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현경의 가족관찰기
선현경 지음 / 뜨인돌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15



함께 놀아 한결 재미있는

― 선현경의 가족관찰기

 선현경 글·그림

 뜨인돌 펴냄, 2005.1.10.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아이들과 함께 뒹굴며 놀기도 하고, 아이들이 달라붙어 놀기도 합니다. 새로운 놀이로 아이들을 이끌기도 하지만, 아이들 스스로 새로운 놀이를 지어서 신나게 웃고 노래하기도 합니ㅃ다.


  놀이는 노는 사람이 새롭게 짓습니다. 누가 가르치기에 놀지 않습니다. 누가 알려주어서 놀지 않아요. 언제나 스스로 놉니다.


  나뭇가지를 써서 어떻게 놀 수 있다고 한 가지쯤 알려줄 수 있습니다. 이 다음부터는 오로지 아이 몫입니다. 나뭇가지를 연필 삼아 흙바닥에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나뭇가지를 꼬챙이나 지팡이로 삼을 수 있으며, 나뭇가지를 다리로 여길 수 있습니다. 나뭇가지는 칼이 되기도 하지만, 하늘을 나는 날개가 될 수 있어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 우리도 여행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어쩌면 한두 달 하다 보니 집에 가기 싫어졌고, 서너 달 다니다 보니 서울에 가기가 무서워졌고, 너덧 달 하다 보니 앞으로 먹고살 일이 걱정되어 길어졌는지도 모르겠다. (22쪽)

- 결혼을 하기 전까지 난 남자를 몰랐다. 아니, 알았다고 해도 그건 다 가짜다. 어째서 난 아빠나 집안에 널려 있는 남자를 보고 직감하지 못했을까? 어째서 내 남편만은 그들과 전혀 다를 거라 섣불리 단정지었을까? (35쪽)





  밥을 짓습니다. 함께 먹을 밥을 짓습니다. 날마다 똑같이 먹는 밥이지만, 날마다 다르게 짓습니다. 여느 밥으로 짓더라도 그릇에 다른 모양새로 풀 수 있고, 국그릇과 밥그릇을 바꿀 수 있습니다. 어느 날은 국을 듬뿍 담고, 어느 날은 밥을 듬뿍 담을 수 있어요. 당근과 고구마와 감자와 양파를 볶을 수 있지만, 당근과 고구마와 감자와 양파를 밥냄비에 넣어 함께 끓일 수 있습니다. 당근과 고구마와 감자와 양파를 알맞게 삶을 수도 있고, 떡볶이를 하거나 비빔국수를 할 수 있습니다.


  바람을 마십니다. 잠자리에 누워서 바람을 마시고, 천천히 거닐면서 바람을 마십니다. 자전거를 타면서 바람을 마시고, 두 다리로 달리면서 바람을 마십니다. 놀면서 마실 수 있는 바람이고, 뒷밭에서 호미질을 하며 마실 수 있는 바람입니다. 늘 마시는 바람이지만 늘 다르게 마실 수 있는 바람입니다.



- 남편에겐 나의 친정이 나에게 시댁과 같은 느낌이겠지. 발 쭉 뻗고 누워 쉬고 있어도 다리가 아픈 불편한 장소 …… 명절이나 제사 때 친정에 가면 남편은 늘 뭔가를 하고 있다. 제사 음식을 나르기도 하고, 상을 닦기도 하며, 심지어 집안 어른들과 대화를 하기도 한다. 평소엔 찾아볼 수 없는 참 바지런한 모습이다. (66쪽)

- 남자들이 모이면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소재가 군대에 관한 것처럼, 우린 둘러앉아 아줌마들만이 경험할 수 있었던 이야기를 나눈다. (82쪽)





  《선현경의 가족관찰기》(뜨인돌,2005)를 읽습니다. 혼자 놀던 선현경 님이 둘이 노는 사이가 되다가, 어느새 셋이 노는 삶으로 달라지는 흐름을 찬찬히 글과 그림으로 엮습니다.


  혼자 놀면 혼자 노는 대로 재미있습니다. 함께 놀면 함께 노는 대로 재미있습니다. 혼자 먹으려고 짓는 밥은 혼자 먹으려고 짓는 대로 맛있습니다. 함께 먹으려고 짓는 밥은 함께 먹으려고 짓는 대로 맛있어요.


  어떤 밥을 먹든 우리가 누리는 밥입니다. 어떤 놀이를 하든 우리가 누리는 놀이입니다. 어떤 집에서 어떤 살림을 꾸리는 우리 삶이요 우리 꿈입니다.



- 이제는 그만 나를 나로서 인정해 주길 바라는데 말이다. 나란 인간이 조금은 덜렁대고, 조금은 잘 잊어버리고, 조금은 정신없다는 사실을 제발 기억해 주기를. 눈 한번 꼭 감고 그저 아무 말 없이 감싸 주기를. 우선 나부터 눈 한번 꼭 감고 감싸 줄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누구부터 감싸 주지? (186쪽)






  만화책 《선현경의 가족관찰기》는 선현경 님이 바로 이녁한테 스스로 주는 선물과 같은 책이라고 느낍니다. 선현경 님을 둘러싼 곁님과 아이를 따사로이 바라보는 눈길을 담아, 오늘 하루 즐겁게 누리는 이야기를 스스로 선물하고 스스로 받는 책이라고 느껴요.


  왜냐하면, 이 책은 하루하루 흐르면 흐를수록 누구보다 선현경 님한테 애틋할 테니까요.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이 책을 들여다보며 킥킥 웃을 수 있고, 선현경 님 곁님도 나중에 이 책을 되읽으며 하하 웃을 수 있지만, 누구보다 선현경 님 스스로 먼 뒷날 이 책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빙그레 웃음꽃을 피우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쓰는 모든 글과 우리가 그리는 모든 그림과 우리가 찍는 모든 사진과 우리가 부르는 모든 노래는 바로 우리가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면서 심는 따사롭고 알찬 씨앗입니다. 4347.11.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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