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 1+2집 17종세트 (17disc)
스크린에듀케이션(DVD)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빨간머리 앤

Anne of Green Gables, 1979



  끝에 ‘e’가 붙는 ‘앤’이라는 이름을 똑똑히 밝히는 빨간머리 가시내는 능금꽃이 하얗게 물든 시골길을 아저씨하고 처음 지나간다. 말이 끄는 나무수레를 탄 앤이라는 가시내는 능금꽃물결을 보고는 넋을 잃듯이 아름다운 나라로 빠져든다. 말수레를 끄는 아저씨는 해마다 능금꽃물결을 보기는 보았으나 어린 가시내처럼 아름다운 나라로 빠져든 적이 없다. 앤이라는 아이가 지낼 곳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아주머니도 이와 같다. 아니, 조그마한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들 가운데 능금나무가 해마다 하얀 꽃물결을 이룬다고 생각한 이는 있기나 할까. 하얗게 일렁이는 꽃보라를 마음 가득 받아들인 이는 얼마나 있을까. 꽃이 피고 나면 이윽고 꽃이 지고, 꽃이 지면 이윽고 열매가 맺는다고만 여길 뿐, 꽃물결이나 꽃보라를 가슴에 포옥 안으면서 기쁨을 느낀 이는 없지 않을까.


  시키는 대로 따르고 해야만 하는 일을 해야 하는 흐름으로 살던 사람들한테, 앤은 그야말로 말썽거리나 골칫거리라 할 만하다. 왜냐하면, 앤은 무엇이든 ‘똑같이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앤은 언제나 ‘앤이라고 하는 내 눈길’로 바라본다. 그래서, 앤은 모든 곳에 이름을 붙이고, 누구한테나 이름을 물으며, 모든 것에 걸맞도록 이름을 짓고 싶다. 이름을 붙이면서 새로운 숨결이 자라고, 이름을 부르면서 새로운 동무가 되며, 이름을 지으면서 새로운 삶이 피어난다.


  그러고 보면,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에서 앤이 우람한 능금나무가 줄줄이 늘어선 시골길을 지나면서 ‘능금꽃물결’을 알아채면서 환하게 웃기에, 나도 능금꽃을 새롭게 보고 새롭게 생각하며 새롭게 마주하는구나 싶다. 앤이 그 길을 바라보면서 말을 걸기에 나도 그 길을 바라보면서 즐겁게 노래하는 웃음꽃을 알아보는구나 싶다.


  푸른 들과 숲에 둘러싸인 마을에 조용히 선 푸른 지붕 살림집에서 푸른 사랑이 푸르게 싹이 트려 한다. 푸른 빛깔 지붕과 빨간 빛깔 머리카락은 여러모로 살가이 어우러진다. 푸른 들에 피어나는 빨간 꽃이라고 할까. 새봄에 들과 숲이 푸르게 다시 태어날 적에 빨갛게 피어나면서 기쁜 노래를 알려주는 숨결이라고 할까.


  노란 꽃도 빨간 꽃도 곱다. 까만 씨앗도 곱다. 파란 하늘과 물결도 곱다. 하얀 구름도 곱다. 누런 밀알과 쌀알도 곱다. 이 땅에 곱지 않은 빛깔도 이야기도 넋도 따로 없다. 우리가 눈을 들어 바라보면서 사랑이라는 이름을 심을 때에 저마다 새롭게 깨어나면서 환하게 빛난다. 4347.11.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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