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장만하려는 마음
내 넋이 한결 즐거우면서 따스하고 아름답게 자라기를 바라면서 책을 장만합니다. 책 한 권을 장만할 적에 아무 책이나 장만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살찌울 만한 책을 살핍니다. 값이 싸다고 해서 아무 책이나 장만할 수 없습니다. 마음에 들던 어느 책을 어느 때에 퍽 싸게 판다면 장만할 수 있지만, 내가 장만할 책은 값으로 따지지 않습니다. 책에 깃든 이야기로 헤아립니다.
내 몸이 오늘 하루 기쁘게 기운을 내어 내가 바라는 일과 놀이를 씩씩하게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밥을 짓습니다. 그래서 밥 한 그릇을 차릴 적에 아무렇게나 짓지 않습니다. 가장 넉넉하고 푸지게 누릴 수 있는 밥을 짓습니다. 가만가만 노래를 부르면서 밥냄비에 불을 넣습니다. 조용조용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배추를 썹니다.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을 헤아리면서 그릇과 접시를 소담스럽게 밥상에 올립니다.
별을 올려다봅니다. 나무를 바라봅니다. 풀잎을 쓰다듬습니다. 이 가을에 새로 돋는 풀잎에는 어떤 기운이 서리나 하고 생각하면서 한 장 두 장 석 장 넉 장 뜯습니다. 가을에 새로 돋은 풀잎은 내 몸에 어떤 숨결로 스며들까 하고 생각하면서 칼로 송송 썰어서 살살 무칩니다. 늦가을 찬바람에도 씩씩하게 돋는 풀처럼, 늦가을 찬바람쯤 기쁘게 맞을 수 있는 몸이 될 테지요. 늦가을 눈부신 별빛과 포근한 햇볕처럼 빙긋 웃는 숨결이 될 테지요.
내가 즐겁게 일구는 삶이 내 이웃한테 노래가 되어 퍼집니다. 내 이웃이 기쁘게 가꾸는 삶이 나한테 노래가 되어 찾아옵니다. 가는 노래는 오는 노래가 되고, 가는 사랑은 오는 사랑이 됩니다. 책상맡에 놓은 책 한 권을 살살 쓰다듬습니다. 오늘 내가 읽는 책은 머잖아 아이들이 읽는 책이 됩니다. 4347.11.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