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다 차린 뒤
밥을 다 차린 뒤 으레 사진기를 찾는다. 찬거리가 푸지든 몇 없든 한두 장 사진으로 건사한다. 곁님이랑 아이하고 누리는 밥이 어떠한가 돌아본다. 처음에는 밥차림을 사진으로 찍을 생각을 안 했지만, 우리 밥차림을 수수하게 사진으로 담자고 생각한 어느 날부터 밥차림이 조금씩 달라진다고 느낀다. 밥 한 그릇은 손으로 수저를 들어 입으로 넣으면서 먹을 뿐 아니라, 코로 냄새를 맡고 눈으로 빛깔과 무늬를 바라보는구나 하고 느낀다. 똑같은 밥과 반찬이어도 접시에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겉모습으로만 밥차림을 따질 수 없다. 밥 한 그릇으로 몸을 살찌우려는 마음을 읽어야 한다고 느낀다. 밥 한 그릇을 빌어 마음을 담고, 밥 한 그릇을 거쳐 마음을 나눈다.
손이 바쁘면 아이들을 부른다. “벼리야, 보라야, 아버지한테 사진기를 가져다주렴.” 아이들은 사진기 하나를 둘이 함께 든다. 작은아이가 혼자 들 만한 무게이지만, 두 아이는 놀이를 하듯이 사진기를 천천히 나른다. “자, 사진기 가져왔어요.” “고마워.” 사진 한 장 찰칵 찍고 수저를 든다. 4347.11.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