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인가 ‘떨이 모으기’인가
헌책방에서는 헌책을 다룬다. 헌책방에서는 헌책을 사고판다. 그러나, 헌책도 새책도 그저 똑같은 책이다. 물건을 사고팔 적에는 새책과 헌책이 값이 다르지만, 물건이 아닌 책을 손에 쥐어 읽을 적에는 ‘1000원을 주고 장만한 《태백산맥》’을 읽든 ‘10000원을 주고 장만한 《태백산맥》’을 읽든 똑같다. 1000원을 주고 장만한 책을 읽기 때문에 ‘마음 울림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꼭 10000원을 주고 장만한 책을 읽어야 ‘마음 울림이 생기’지는 않는다.
책마을 일꾼은 ‘사람들한테 아름답게 읽힐 책’을 엮어야 한다. 책마을 일꾼부터 ‘두고두고 건사해서 앞으로 오백 해를 잇고 즈믄 해를 이을 만한 책’을 내놓아야 한다. ‘사람들 가슴에 따순 햇볕처럼 스밀 이야기를 담은 책’을 선보여야 한다. ‘이럭저럭 읽을 만하면서 값싼 책’이 아니라 ‘아무래도 읽어야겠다 싶도록 눈길을 끌어서 왕창 에누리하며 팔 책’이 아니라, ‘책다운 책’을 펴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책마을은 아직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려 힘쓰는 사람이 무척 많지만, 아름답지 않은 길을 걸으면서 널리 이름을 알리거나 장사를 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 적잖은 사람들은 안 아름다운 길을 걷는 안 아름다운 책과 출판사에 많이 휘둘린다.
반값으로 후려쳐서 파는 새책을 사서 읽든, 반값조차 아닌 70%나 90%까지 후려쳐서 파는 새책을 사서 읽든, 우리는 언제나 ‘책’을 사서 읽을 뿐이다. 그러니까, 책을 사서 읽으려 할 적에는 언제나 한 가지만 생각해야 한다. 내가 읽어야 할 책을 장만하는가? 내가 두고두고 건사해서 죽는 날까지 곁에 둘 만한 책을 장만하는가? 내가 기쁘게 읽어 마음을 살찌우고 삶을 환하게 빛내도록 이끌 만한 책을 장만하는가? 이웃이나 동무한테 선물로 사서 줄 만한 책을 장만하는가? 4347.11.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