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84. 사진도 생각도 자랍니다
호박씨는 어른 손톱하고 비슷한 크기입니다. 씨앗 가운데 퍽 크다 할 만합니다. 볍씨는 꽤 작고, 무씨나 배추씨는 더욱 작으며, 당근씨는 훨씬 작아요. 민들레씨나 까마중씨는 거의 깨알만 하거나 깨알보다 작다 할 수 있습니다. 고들빼기 씨앗도 무척 작습니다. 그런데, 이 조그마한 고들빼기는 어른보다 큰 키로 자라기 일쑤입니다. 줄기도 아주 굵고 단단합니다. 상추씨를 심은 뒤 상추씨를 받으려고 꽃대를 그대로 두면 무척 굵고 단단해서 마치 나무와 같이 단단한 줄기가 뻗습니다. 씨앗 가운데 제법 크다는 호박씨이기는 한데, 꽃이 지고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면, 처음에는 ‘애호박’이지만, 어느새 ‘애’가 아닌 ‘젊은 어른’ 호박으로 굵으며, ‘젊은 어른’을 지나 ‘늙은호박’이 되면 대단히 무거우면서 커다란 열매덩이로 거듭납니다.
조그마한 씨앗이 자라서 큰 나무를 이룹니다. 키가 백 미터를 넘는 나무도 씨앗은 아주 작습니다. 즈믄 해를 살아낸 나무도 처음 땅에 뿌리를 내린 씨앗은 아주 작습니다. 작은 씨앗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을 해마다 꾸준히 맞이하면서 자랍니다. 오랜 나날 온갖 바람을 쐬고 갖은 햇볕을 머금으며 숱한 빗물을 빨아들여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진 숲이 태어납니다.
사람도 아주 작은 씨앗에서 비롯합니다. 우리 눈으로 알아볼 수 없도록 작은 씨앗 둘이 만나서 새로운 목숨이 태어납니다. 처음에는 우리 눈으로 알아볼 수 없도록 작은 씨앗인데, 이 씨앗은 어머니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아기가 되어요. 아기는 이 땅으로 나와서 젖을 빨고 뒤집기를 하다가 볼볼 기더니 어느새 우뚝 일어서서 신나게 뛰놉니다.
모두 자랍니다. 목숨이 있으면 모두 자랍니다. 목숨이 있기에 모두 자라서 아름다운 숨결로 거듭납니다. 우리는 모두 날마다 차츰차츰 자라는 사람이요 목숨이고 숨결입니다. 우리가 찍는 사진이 자랍니다. 우리가 사진을 찍는 눈길과 손길이 자랍니다. 우리가 사진을 찍어 이웃과 나누는 마음결과 생각이 자랍니다. 우리가 찍은 사진으로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나누는 사랑이 자랍니다.
즐겁고 자랍니다. 기쁘게 자랍니다. 씩씩하게 자라고, 튼튼하게 자랍니다. 아름답게 자라고, 싱그럽게 자랍니다. 언제나 새롭게 자라는 사진이요 마음이며 넋이기에, 이러한 흐름과 결을 찬찬히 읽고 살핀다면, 머잖아 우리 사진은 웃음꽃이 되고 웃음나무가 되다가 웃음숲이 되리라 봅니다. 4347.11.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