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썰기



  파를 썰 때면 으레 어릴 적이 떠오른다. 어머니가 나한테 처음 부엌칼을 쥐도록 하던 일은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헤아리는데, 거의 안 떠오르지만, 아마 파썰기가 아니었을까. 처음 파를 썰던 때에는 큰파는 그야말로 크구나 하고 여겼다. 어쩌면 이렇게 파는 클까 하고 생각했다. 아이 몸에서 자라 어른 몸이 된 오늘날, 나는 두 아이를 먹여살리는 밥을 짓는다. 어른 몸으로 큰파를 썰 때면, 큰파라 하지만 그리 크지도 않다고 느낀다. 그러나, 큰파를 어른 입에 맞게 굵게 썰면, 아이들이 먹기에 퍽 나쁘다. 큰파를 아이들이 먹도록 하자면, 가로로도 썰고 세로로도 썰면서 조그마한 크기로 만들어야 한다. 작으면서 고운 빛이 어우러지도록 썰면, 두 아이가 아버지 곁에 서서 물끄러미 쳐다보며 묻는다. “뭐 썰어?” “파.” “파?” “응.” “아, 우리 집 마당에도 심은 그 커다란 파?” “응.”


  파를 잘게 썰면서 파한테 말을 건다. 얘야, 우리 집 아이들한테 곱게 스며들어 주렴. 우리 집 아이들한테 맛난 밥이 되어 주렴. 우리 집 아이들한테 푸른 숨결이 되어 주렴. 4347.1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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