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다녀간 우리 집 제비꽃



  읍내 저잣거리에서 큰파를 장만한 뒤, 파뿌리는 넉넉하게 잘라 마당 한쪽에 심으려고 자리를 살피다가, 언제 우리 집 마당에서 피고 지었는지, 제비꽃줄기 한 가닥을 본다. 씨방을 쫙 벌린 제비꽃줄기를 한참 바라본다. 쪼그려앉아서 바라본다. 너 언제 보랏빛 고운 꽃을 이곳에서 피웠니? 네가 꽃을 활짝 벌리면서 노래할 적에 내가 네 노래를 못 들었구나. 꽃이 필 적에도 꽃이 질 적에도 씨앗을 맺을 적에도 못 알아보다가, 씨앗을 다 퍼뜨리고 난 이제서야 알아보는구나. 마을 고샅길에 핀 제비꽃은 냉큼 알아보았으면서, 어떻게 우리 집 마당 한쪽에서 피고 진 제비꽃은 못 알아보았을까. 괜히 혼자 부끄러워 한참 쪼그려앉아 제비꽃줄기를 살살 쓰다듬다가 일어난다.


  괜찮아. 꽃씨를 흩뿌렸으니 이듬해 새봄에 새롭게 터질 보랏빛 꽃송이를, 그때 제대로 알아볼게. 이듬해 새로운 가을에는 너희를 우리 집 마당에서 꼭 제대로 살펴볼게. 4347.1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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