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90] 섞어밥



  우리 집 밥순이와 밥돌이한테 먹이려고 날마다 밥을 짓습니다. 밥순이와 밥돌이는 밥을 참 잘 먹습니다. 풀밥을 차리든 풀볶음밥을 내주든 아주 잘 먹습니다. 낮잠까지 거르면서 신나게 뛰놀며 하루 내내 배고프다고 노래하는 아이들한테 한두 시간마다 무어 먹을거리를 차리자니 저녁에는 그만 기운이 빠집니다만, 한 그릇 더 먹이면 틀림없이 곯아떨어지리라 생각하며 ‘섞어밥’을 짓기로 합니다. 밥 끓이는 냄비에 미리 씻어 불린 누런쌀과 보리를 잔잔히 깔고, 고구마 한 뿌리, 감자 한 알, 당근 반 토막, 양송이버섯 아홉, 마늘 여섯 알을 넣은 뒤 끓입니다. 물이 끓기 앞서 소금을 알맞게 넣어 짭조름하게 간을 맞춥니다. 밥돌이는 ‘섞어밥’을 곧 말끔히 비우더니 “나 졸래, 잘래.” 합니다. 이를 닦이고 자리에 눕히니 곧바로 곯아떨어집니다. 밥순이는 혼자 이를 닦은 뒤 한참 자리에 누워 뒤척이다가 조용히 곯아떨어집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나도 비로소 섞어밥을 한 숟가락 먹는데, 내가 끓인 밥이면서도 참 맛납니다. 이레에 한 차례쯤 섞어밥을 지을 만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맛나도 날마다 지으면 물릴 수 있으니까요. 4347.1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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