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80. 시골 가을볕
아침이 됩니다. 동이 트면서 날이 밝습니다. 날이 밝으면 지붕에도 마당에도 밭자락에도 빈논에도 모두 올망졸망 이슬이 맺힙니다. 아침볕을 받는 이슬은 반짝반짝 빛납니다. 해가 높이 솟으면 이슬은 모두 마릅니다. 그러나, 햇볕에 마르기 앞서 풀과 나무가 이슬을 마시고, 풀벌레와 작은 풀짐승이 이슬을 먹습니다. 숲에 짐승이 많던 지난날에는 숲짐승이 풀잎과 함께 이슬을 함께 먹었을 테고, 사람들이 도시 아닌 숲에 깃들어 살 적에는 이 아침이슬을 고맙게 받아서 먹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날이 조금 더 추우면 서리가 내립니다. 서리가 내린 들은 차갑습니다. 가을에도 한낮에는 볕이 따스하기에 이 늦가을을 마치 봄인 줄 잘못 알고 깨어나는 풀과 꽃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그만 차가운 서리를 맞아요. 된서리를 맞습니다. 새벽에 된서리를 맞은 가을풀과 가을꽃은 오들오들 떨어요. 그렇지만 이윽고 동이 트고 해가 솟으면서 이슬도 서리도 모두 녹아서 사라지면 천천히 기지개를 켭니다. 아직 겨울잠을 안 자는 풀벌레와 풀짐승도 아침까지 오들오들 떨다가 비로소 몸을 움직입니다.
가을볕은 나즈막합니다. 겨울볕은 퍽 낮습니다. 나즈막하게 내리쬐는 가을볕은 그림자를 길게 드리웁니다. 퍽 낮은 겨울볕은 그림자를 더욱 길게 드리웁니다. 아이들은 가을과 겨울에 그림자놀이를 즐깁니다. 여름에는 그림자가 아주 조그맣지요. 몽당그림자라고 할까요. 여름에는 그림자놀이가 그닥 안 재미있을 수 있지만, 가을과 겨울에는 길디긴 그림자를 서로 밟으면서 까르르 웃고 떠듭니다.
시골집 처마는 늦가을부터 이른봄까지 포근한 볕을 듬뿍 받아들입니다. 시골집 처마는 빗물을 긋거나 따가운 여름볕을 막는 한편, 늦가을과 한겨울에는 햇볕을 골고루 받아들여 온 집안을 포근하게 이끕니다.
철마다 빛과 볕과 살이 다릅니다. 달마다 빛과 볕과 살이 움직입니다. 해가 안 드는 건물에서 전깃불을 밝히면 철과 달과 날을 모르는 사진이 됩니다. 마당이나 마루나 들이나 숲에서 햇볕을 쬐면, 우리는 언제나 다르면서 새삼스럽고 새로운 빛물결과 볕물결을 온몸으로 맞아들이는 사진을 누립니다. 4347.1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