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89] 잘 있어



  나는 어릴 적부터 ‘안녕(安寧)’이라는 인사말을 즐기지 않았습니다. 그때에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에 어른들이 흔히 쓰기에 나도 얼결에 따라서 쓰던 ‘바이바이’도 나중에 중학교에 가서 영어를 배운 뒤에야 말뜻을 알고는 참으로 부끄러웠던 일을 떠올립니다. 왜냐하면, 인사말을 하면서 인사말이 어떤 뜻인지 모르는 채 그저 읊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녕’이라는 한자말이 나쁜 말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인사말을 쓰는 어른들은 말뜻을 알려주지 않았고, 나도 어릴 적에는 말뜻을 스스로 알아보려고 마음을 쏟지 못했어요. 이와 달리 “잘 있어”나 “잘 가”라고 할 적에는 말뜻이나 느낌이 또렷했어요. ‘잘’과 ‘있다’와 ‘가다’라는 말마디를 읽으면, 서로 다른 자리에 서면서 새롭게 짓는 삶을 그릴 수 있어요. 언젠가 어느 동네 할배가 “살펴 가” 하고 들려준 인사말을 듣고는 머리 한쪽이 확 열렸어요. ‘살펴’ 가라니, ‘살피다’란 무엇인가 하고 갑자기 온갖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렇구나. 우리가 가는 길을 우리가 손수 ‘살필’ 수 있어야 하는구나, 생각을 살피고 마음과 삶과 보금자리 모두 살필 수 있어야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나마스떼’ 같은 말을 우리가 읊기도 하고, ‘샨티’라는 이름을 우리가 즐겁게 쓰기도 하듯이 ‘안녕’이나 ‘바이바이’도 얼마든지 쓸 만하다고 느껴요. 그리고, 이런 온갖 아름다운 인사말과 함께, 우리가 예부터 이곳에서 즐겁고 사랑스레 나누던 인사말 “잘 있어” “반갑구나” “잘 가” “살펴 가셔요”도 빙그레 웃음지으면서 노래합니다. 4347.1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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